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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호주 카카두 국립공원(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톱 엔드(Top End)-카카두.'

호주사람들은 호주 북부자치주인 노던 테리토리주의 카카두국립공원 지역을 이렇게 부른다.지도상 북쪽 끝이기도 하지만 원시자연의 건강함을 간직한 문명의 변방이란 의미가 더욱 강하다.

카카두는'증명사진'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라면 결코 권유할 만한 관광지가 못된다.열대 사바나 기후가 빚어놓은 넓이 2만평방㎞의 광활한 밀림지대는 대부분 어둡고 축축하다.

11월부터 3월까지 4개월은 연평균 1천4백㎜의 폭우가 쏟아지는 우기며 나머지 기간(4~10월)엔 찌는듯한 더위와 원시림 특유의 끈적끈적한 습기가 온몸에 달라붙는다.그러나 카카두만을 위해 지난해 호주바깥에서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수

가 10만명.더위와 불쾌지수에도 불구하고 카카두 밀림을 찾도록 한 매력은 무엇일까.

지난 10일 이곳 우비르 바위고원에서 만난 일본여성 요시다 가즈코(32.미술교사)는 그 이유를“그림 때문”이라고 간단히 요약했다.대자연의 그림이 아니다.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진들이 수만년에 걸쳐 카카두의 바위에 남긴 암벽화는 인간그

림으로 곧 인류의 역사다.부부동반으로 독일에서 왔다는 디터 야프(58.다임러 벤츠항공사 이사)는“이토록 감동적인 역사는 없다”며'미미의 암벽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미미'는 그림의 정령.호주의 원래 주인인 애버리진들이 카카두에 정착한 것은 4만~6만년전.이미 3만5천년전에 암벽에 남긴 애버리진의 손(手)판화가 발견되는등 카카두 동남부 일대 바위고원엔 1천여곳의 암벽화군이 야외 갤러리처럼 널려

있다.카카두에서 가장 최근의 빙하기는 2만년전.빙하기를 견디고 홍수와 산불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은 그리고 또 그렸다.그림이 문자였으며 문화와 역사 자체가 됐다.문자가 없었으므로 그림의 정확한 내용이나 유래는 구전에 의해 전승됐다.시

간이 흘러 구전조차 소멸한 아득한 옛 그림은 모두 그림의 정령이자 조상신인'미미'의 작품이 됐다.

암벽화의 소재와 크기는 다양하다.캥거루와 민물고기인 바라문디등

수렵대상에서부터 수렵에 필요한 각종 도구와 사용법,수렵과 공동생활의

윤리에 대한 교육적 내용,번개의 신인'나마르곤'의 신화까지 애버리진의

정신적.육체적 삶이 수만년에

걸쳐 암벽화로 복습되고 확대 재생산됐다.안료는 황토나 흰 진흙을 썼다.

특히 철산화물을 함유한 황.적색의 진흙 안료로 그린 암벽화는 바위의

석영과 결합해 수만년의 풍화를 견디며 애버리진의 정신사를 증거하고

있다.가장 최근의 그림은 1백~2백년전 것인 라이플총과 백인의

형상이다.그 이후의 암벽화는 드물

며 생기도 잃고 있다.호주의 새 주인 유럽인들과 함께'암벽의 르네상스'가

종언을 고한 것이다.

경상북도 크기 만한 카카두국립공원엔 현재 고작 3백명의 주민이

산다.모두 애버리진들.1백년전 3천명이던 것에 비해 10분의1로

줄어들었으며 그나마 암벽화를 할 줄 아는 이는 한 두명에

불과하다.'최후의 화가'로 불리는 빅 벨 네이

지(나이 미상)가 국립공원감시원인 아들 조너선 야라마르나(35)와

손자에게 암벽화'공부'를 시키고 있는 정도다.

네이지는“그림을 통해서만 월러비와 월러루(이상 캥거루의

일종),악어.고아나도마뱀.사막주머니쥐.올리브비단뱀및 화려하기 그지없는

각종 새등 잊혀져가는'우리 식구'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카두 지역의 암벽화는 노던 테리토리 주정부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유엔은 이곳 암벽화를'인류 미래를 위한 유산'으로

선포했다.애버리진에겐 상실의 땅.그러나 수만년에 걸친 암벽화는 이곳을

'비경'으로 만들고 있는 이유며 카카두의 대

자연과 함께 문명인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카카두(호주)=임용진

기자]

<사진설명>

우비르고원에서 대평원 습지를 향해 장쾌하게 내려 꽂히는

짐짐폭포(1백60).연평균 1천4백㎜나 폭우가 쏟아지는 우기엔 이같은

폭포가 카카두 전역에서 생겨나 대자연의 경이를 연출한다.

[카카두=임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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