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가지려 평화 버렸다 - 이스라엘 정착촌 강행 무엇을 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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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스라엘이 18일 팔레스타인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동예루살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시작함으로써 중동평화 과정은 전면 붕괴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목숨을 건 저지 경고와 유엔등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정착촌 건설을 밀어붙인 것은 사실상 중동평화를 무시하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이는 지난 93년과 95년 두차례'오슬로 중동평화협정'의 기본 골격인'땅과 평화의 교환'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평화와 땅 어느 것도 팔레스타인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의도를 명백히 드러낸 셈이다.

네타냐후는 정착촌 강행과 관련,“어느 누구와도 대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팔레스타인측의 폭력적 저항을 유도하는 듯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팔레스타인의 저항으로 유혈사태가 촉발되면 평화를 깬 쪽은 오히려 팔레스타인이라고 떠넘

겨 자신에게 집중되고 있는 국내외의 비난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네타냐후가 선택한 이같은 모험주의는▶동예루살렘반환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거공약으로 집권한 그의 태생적 한계▶최근 검찰총장의 임명을 둘러싼 정치스캔들로 야당은 물론 집권 연정안에서조차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데 따른 탈출구 찾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동문제 전문가들은“네타냐후는 지금 아무 생각도 없는 영웅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오히려 답답한 쪽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이다.막무가내식으로 나오는 네타냐후와는 더이상 합리적 대화가 통하지 않는데다 자칫 강경대응의 길을 선택할 경우 네타냐후의 의도에 말려들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이를 반영하

듯 아라파트는 18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먼저 폭력사태를 야기하지 말도록 지시해 두었다.

그러나 네타냐후의 뜻대로 정착촌이 완성되고 중동 평화과정이 전면 중단될 가능성은 적다.아랍권의 반발과 국제사회의 집요한 압력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스라엘 국민들이 그의 모험주의에 염증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최근의 한 여론조사에 따

르면 이스라엘 국민의 60% 이상이 네타냐후가 강경노선을 버리고 평화과정에 복귀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시위대 수십명이 지난 17일부터 정착촌 공사장 인근에 텐트를 치고 농성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가세,합동시위에 들어간 것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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