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규제와 재산권 - 골프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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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그레그 노먼에게 몰래 골프 한수 배우려다 계단에서 넘어져 오른쪽 무릎 힘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예정한 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되었다.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지만 미국인들은 별로

이 소리 저 소리 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는 아직도 공직자 골프가 사실상 해금되지 않은 상태다.나라마다 사정은 있겠지만 어느쪽이 더 세계화에 적합할까.

골프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외제 골프채 수입이 1억달러가 넘은 것도 우리의 관심사다.여행후 하나씩 가져오는 것을 더하면 외제 골프채 수입은 공식통계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다.이를 두고 사회 일각에서는 과소비를 탓하고 흔히 절약캠페인으

로 접근하려 한다.그런데 이렇게 해서 효과가 있을까.문제를 해결하자면 본질을 고쳐야 한다.한마디로 외제 골프채 수입을 줄이자면 골프산업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골프서비스의 공급을 늘려 대중화해야 한다.

공직자가 골프를 쳐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시비는 정작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문제는 대통령이 공직자 골프를 사실상 금지하기 때문에 골프산업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쉬쉬하는 가운데 규제로 인한 시장왜곡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 이는 골프장 회원권에 대한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가로막고 권력기관의 부당한 개입과 규제를 통해 시장왜곡을 제도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정부의 잘못된 정책,그리고 사회 일각의 오도된 형평성의 잣대가 한데 어울려 만든 규

제의 역효과를 살펴 보기에 골프산업은 그 좋은 예다.

공직자비리를 줄이자고 시작한 정책지침이 의도하지 않은 자원의 낭비를 가져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대체로 우리나라의 한해 골프산업은 12조원의 시장규모가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골프장산업이 10조원,회원권 매매가 1조2천억원,의류가

6천억원,그리고 골프채시장이 2천억원정도의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여기에는 부킹에 필요한 뒷돈이나 골프연습장은 포함되지도 않는다.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골프산업규모가 24조원정도로 추정되었으니 거의 절반정

도 수준인 셈이다.

이같이 큰 산업에 대해 정부의 원칙없는 정책과 지나친 시장개입으로 자원배분의 왜곡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먼저 골프장에서 부킹과 관련해 벌어지는 비리를 보자.기본적으로 골프장을 하겠다는 것부터 자유로운 진입.퇴출이 이루어지지 않

는다.그 결과 골프장은 회원권을 재산권으로서 거의 존중하지 않는다.왜냐하면 비회원에게 더 많은 입장료를 받아야 이익이기 때문이다.그래도 회원은 울며 겨자먹기로 사업상 부킹을 부탁하느라 골프장의 담당직원에게 일정액을 뒷돈으로 주어야

한다.골프상회에서는 골프장부킹 1회분이 20만원에서 30만원에 팔린다.일종의 규모가 큰 극장 암표시장으로 이해하면 된다.

왜 이렇게 암시장이 존재하는가.이유는 간단하다.소득이 늘어나고 레저에 대한 국민적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만 골프공급이 규제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면 왜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가.규제를 완화하지 않는 것이 규제권자인 정부담당자에게

이득이 더 크기 때문이다.겉으로는 국민위화감(違和感)이니 환경보호니 하는 구호를 내세우지만 문제의 본질은 골프에 대한 초과수요를 정부규제 때문에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2천개 이상의 골프장이 있으나 우리는 20분의1도 안되는 정도다.시장규모의 차이에 비해 공급이 훨씬 모자란다.만약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정부가 할 일은 골프장 인허가를 규제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사를 하는가를

감독하는 것이다.규제는 바로 규제공무원의 비리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또한 골프가 특수층의 오락으로 전락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면 누구나 골프를 치게 하기 위해서라도 골프장 건설은 늘어나야 한다.좁은 국토를 거론하는 사람은 산지가 많은 우리의 국토이용률 통계를 보면 그같은 주장이 근거없음을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골프산업에 대한 토론은 감추기보다 공론화되는 것이 마땅하다.고소득시대의 국민레저의 하나로 골프산업을 토의할 때가 되었다.공급확대를 통해 소비자의 입장에서 여가로 인한 효용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판단 잣대가 되어야 한다.그러려면 공

급을 둘러싼 규제를 혁파하고 담당 정부부처를 혁신하는 수밖에 없다.

장현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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