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속의문화유산>7.성덕대왕신종. 백제금동대향로. 백자철화포도문대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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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부가 올해를'문화유산의 해'로 정해 사업을 계획하고 실천해나가는 것은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국민과 정부가 그간 문화유산에 향하던 관심과 이해,어렴풋한 애정을 구체화하는 첫발이라고도 할 수 있다.정부 안에 우리 문화유산을 보

존.관리하는 기관은 아직 절대 부족하고 시설과 인원도 미미한 상태다.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이러한 기관이 늘어나고 내용도 충실해지는 계기가 돼야겠다. 문화유산에 관한 사업은 정부만의 힘으론 절대로 되지 않는다.정부와 국회.지방자치단

체.사법부가 뜻을 같이 해야 함은 물론 이러한 기관의 주체인 국민 각자가 바로 알고 정성을 다해야 가능한 일이다.그런 점에서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문화유산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자부심과 사랑을 학교.가정에서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문화유산에 대한 확신이 마음속에 자리잡아 생활화해야 한다.

至高의 행복감 주는 걸작

경주에 가 성덕대왕신종(봉덕사종)을 바라보며 그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위에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신라 35대 경덕왕은 선고(先考)인 성덕대왕의 명복과 나라의 안녕을

부처님께 기원하고,모든 중생이 장엄하면서 맑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고

깨달아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며 이 종을 조성하기 시작했다.그러나 그가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거하자 그 아들 혜공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완성했다.

세계에는 여러가지 유형의 종이 수없이 많지만 그중 우리나라 종은 우리

종만의 특징이 뚜렷해 학명으로'조선종'이라고 고유명사화돼 있다.

봉덕사종 뿐만 아니라 우리 종에는 신라 이래로 종 머리 한쪽에

음관(音管)이 우뚝 솟아 있고 음관을 감은 용틀임이 있어 용의 등이 종의

중심이 되고 여기에 고리가 있어 매달게 돼 있다.

음관은 종을 칠 때 종신(鐘身) 안에서 울리는 소리가 서로 부딪치면서

내는 불협화음을 걸러내 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되게 한다고 한다.종신에는

위로부터 견대(肩帶)와 음관.비천(飛天)명문.당좌(撞座).구대(口帶)가

있다.

특히 봉덕사종의 구연부(口緣部)는 능화형(菱花形)이다.이러한 종신

장식과 구도도 우리 종만의 특징이다.개체의 문양 자체는 힘차면서

장중하고 유유자적하는 너그러움이 있다.종명(鐘銘)에는 이 종의 형상이

산과 같이 우뚝하다고 돼 있다

.유연하면서 장중한 선의 흐름이 참으로 큰 산같이 의연하고 무한한

포용력과 힘을 지닌 듯하다.음관만이 아니라 지금도 도저히 이를 수 없는

고도의 주조기술로 인해 주물 내에 기포가 없으며 표면의 여러가지 부조

문양이 모두 울림판이 돼

그 소리가 더욱 맑고 우렁차다.신라인의 정성과 미학.음향학.과학기술이

어우러져 혼연히 이뤄낸 위대한 승리라 아니할 수 없다.

종소리를 마음으로 들어보라.가슴을 뒤흔들어 설레게도 하고,벅찬 감동에

가슴 뭉클하게도 하며,무한한 희열을 느끼게도 하고,깊고 긴 여운을 따라

태초의 적막에 이르게도 한다.

百濟예술의 금자탑으로

부여 능산리에는 이미 황폐한 몇마지기 논이 있고 그 아래엔 잡초만

우거진 늪지대가 있었다.고성(古城)과 왕릉지역 사이에 있는 이 일대를

정화하기 위한 기초 발굴조사에서 집터가 발견되고 그 집터에서 93년 12월

우리나라 뿐만 아니

라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금동향로가 발굴됐다.

그 해는 백제 미술의 위대함이 실증적으로 입증된 해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미술사가 크게 빛난 해이기도 하다.

백제 미술은 우아할 뿐만 아니라 다른 미술과 같이 조화미.균형미까지

갖추고 있다.그러나 그 조화미와 균형미가 너무나 혼연하고

자재(自在)로워 인간이 자로 재고 따져 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로

이뤄진 것같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바로 그러한 위대하고 우아한 예술품이다.향로가 처음

발견됐을 때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었다.저렇게 위대한 예술품이,저토록

기기묘묘한 조각으로 전체가 장식된 예술품이 백제 것일 수

있겠는가.아마도 중국 것이 아니겠는

가 했었다.

백제 미술엔 온화하고 우아한 가운데 숨쉬는 위대한 예술혼이 있고 범할

수 없는 기품이 있다.백제금동대향로는 이러한 백제 예술의 모든 것을

한몸에 지니고 있다.섬세하고 장식적이며 조화미와 균형미를 갖춘 것은

물론 우아하면서 역동적인

생동감과 생명력이 약동한다.

이 향로에는 신선사상도,불법(佛法)도 있고 우리 고유의

무속신앙도,민속도 있다.향로가 발견된 곳은 조사결과 백제시대의 거대한

절터로 중앙에서 목탑터가 발견됐고 목탑 심초(心礎)에서 화강암제

사리감(舍利龕)이 발견됐다.

이 사리감에는'백제 창왕 14년(百濟昌王十四年)…'이라는 귀중한 명문이

있다.이 절터와 향로의 연대를 밝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사리감이나 백제 금석문 연구에도 큰 몫을 하는 명문이다.

참으로 잘 생긴 항아리

언제 바라보아도 참 잘 생겼고 너그러운 멋이 풍긴다.잘 생겼다는 개념은

시대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우리

세대인 60대에선 남자라면 원만하고 너그럽고 서글서글 시원한 사람일

것이고,여자라면 구김살

없고 투덕투덕 보름달같은 여인을 생각할 것이다.그것은 외형만 잘 생겨선

안되고 마음씨가 잘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항아리(白瓷鐵畵葡萄文大壺)도 외형뿐만 아니라 내면에서 풍기는

기품이 덕이 있고 의젓하며 시대의 미를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 항아리를 만들어낸 시대는 17세기말부터 18세기초께로 조선조 19대

숙종 연간일 것이다.임진.병자 양란을 겪은 후 황폐한 국토를 다시

일으키고 영.정조 문예부흥기의 기틀을 마련한 시대다.실학(實學)이

일어나고 자아의식이 싹터

우리 생활과 학문.예술이 독창적인 우리 것을 지향하던 때이기도

하다.조선시대 최초기를 제외하면 조선조 백자는 전시대에 걸쳐 우리의

생활 미감과 양식에 맞는 기형(器形).문양을 발전시켜왔지만 조선

중기(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에

는 시대 분위기에 힘입어 가장 독특한 형태와 문양을 가졌으며 이러한

성과는 조선 후기 도자기의 다양성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크고 잘 생긴 항아리의 어깨 위에서부터 힘차고 자연스럽게 사선으로

뻗어내린 포도덩굴은 마치 미풍 속의 포도밭에 포도향을 풍기면서

드리워진 것같으면서도 대인의 품도가 있는데,여백을 과감히 살린 것이

항아리의 면모를 한껏 드높여 주고

있다.

<사진설명>

백제금동대향로

온화함과 우아함은 백제예술의 특징.조화와 균형이 완벽한데다

신선사상.불교.무속.민속까지 담겨 있어 가위 백제미술의 최고봉이다.발굴

당시 모두의 눈을 의심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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