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중·일 사이버 전쟁 위험 수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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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일 네티즌 간에 다시 한번 ‘총성 없는 전쟁’이 불붙고 있다. 독도와 동해 표기 확산에 앞장서온 민간 외교사절단 반크의 웹사이트가 일본 네티즌의 공격으로 일시 다운됐다. 13일 열린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가 김연아 선수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데 기분이 상한 일부 한국 네티즌이 일본 웹사이트를 공격한 게 계기가 된 걸로 알려졌다. 일본의 대표적 우익 계열 사이트인 2ch엔 한국에 대한 원색적 비난 글이 넘쳐나고 반크 공격 지침까지 올라 있다고 한다.

한·중·일 네티즌의 사이버 전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동북공정, 독도 영유권, 교과서 왜곡 등 민감한 정치·역사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3국의 인터넷 게시판은 전쟁터로 변했다. 각자 자기 나라의 우월성을 내세우며 상대 국가를 비방하는 글로 도배질되다시피 했다. 상대국 웹사이트에 실린 댓글을 자동 번역해 주는 사이트까지 여럿 등장하면서 서로에 대한 혐오와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맞아 3국 정상이 손을 맞잡고 협력을 모색하는 이때, 젊은이들은 인터넷에서 소모적인 감정 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간 건 3국 간에 얽히고설킨 과거사 문제, 왜곡된 인터넷 문화 등 다양한 원인이 지적된다. 젊은이들이 취업난 등으로 인한 사회 불만을 인터넷에서 민족주의 감정을 표출하며 해소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유야 어찌 됐든 위험 수위에 다다른 3국 간 사이버 전쟁을 더 이상 방치할 순 없다. 몇 달 전 올림픽 성화 봉송 사태 등을 둘러싸고 한·중 네티즌 간에 반중·반한 감정이 극심해지자 양국 정부가 나서 수습 방안을 모색했었다. 근거 없는 인터넷 루머를 단속하고 청소년 교류를 활성화하자고 입을 모았었다. 서둘러 3국 정부가 다시금 머리를 맞대고 특단의 대책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좋은 경쟁자로, 친구로 미래의 역사를 함께 써 나가야 할 젊은이들이 언제까지 과거 역사에 발목 잡혀 반목을 거듭하도록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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