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목 꼴불견 '미스터 콘돔' '1818' '베이비 세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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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꼴불견을 넘어서 듣기에도 역겨운 제목의 영화들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있다.

개봉중인'미스터 콘돔'.전세계 어디서도 이렇게 낯뜨거운 이름을 달고 일반 영화관에서 대중에 상영되는 영화는 없을 것이다.

제작중인'1818'쯤 되면 품위문제를 넘어 숫제 모국어와 영화매체에 대한 모욕이다.'아이를 판다'는 뜻인'베이비 세일'은 조금 과장하면 인륜을 욕되게 한다.

만인이 즐기는 오락기능과 함께 사회의식을 담아내는 중요한 매체로 기능하는 것이 영화다.

그 영화가 이렇게 민망스럽고 자극적이며 불쾌한 제목으로 노상 호객행위를 하는 매춘을 연상케 하는 수준으로 간판을 달아도 되는가.

충무로 영화계의 한 카피라이터는“일단 어떻게 하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흥행이 된다는 영화계의 고질적 관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야하지 않은 영화라도 성적인 것을 연상시키는 제목을 달아야 관객의 눈을 하나라도 더 끌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영화계 일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

한 영화기획자는“이런 제목의 영화가 개봉돼 관객을 끄는 모습을 보고'우리가 질높은 영화를 만들면 뭐하냐'며 자조하는 영화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품위를 포기해 흥행을 노리는 작태는 개별 영화의 문제에서 국한되지 않고 한국 영화계 전체를 짓누르는 도도한 탁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스터 콘돔'과'베이비 세일'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기업인 대우시네마와 SKC가 각각 제작 지원과 배급을 맡은 영화다.대기업의 영화업 진출이 우리영화의 규모화를 꾀해 영상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라는데 이런

제목들이 그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이에 대해 대우시네마의 관계자는“제작전 자체 모니터 결과 에로영화도 아닌데 이 정도는 괜찮고 관객들도 이런 제목을 성적 농담으로 받아들일 만큼 개방됐다고 판단해 그렇게 제목을 붙였다”고 밝혔다.에로영화도 아니고 코미디인데 그 정도

가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안그래도 에로 비디오영화들의 제목이 갈수록 저질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몇몇 주류 영화마저 이런 제목을 다는 풍조는 영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심화시킨다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비디오쪽은 세간의 화제가 됐던'젖소부인 바람 났네'를 위시해'1010''7센티 여행''1+1=쌍코피'등 망칙한 제목의 비디오 영화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인기 영화제목.광고 카피.젊은층의 농담등을 모두 에로 비디오 제목으로 가져와'너에게 나를 준다''떡갈나무 침대''만득이와 애인바꾸기''무쏘 아줌마와 타우너 아저씨'라는 제목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심지어 선불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인

육조단경의 이름에서 따온'욕조단경'이라는 이름의 비디오 영화도 등장했다.

이런 것들이 문화라는 이름,영화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영화는 문화상품이다.문화는 세계를 만들고 정신문명을 구현하는 미디어이자 예술이다.

더 이상 예술혼도 없고 시대정신도 없이 단지 흥행만으로 영화가 치달을 때'잃은 것은 문화고,얻은 것은 텅빈 객석'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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