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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대마불사론 …중국, 새 강자로 뜰 가능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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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미국 빅3(GM·포드·크라이슬러)는 대마불사(大馬不死)가 될 것인가.’

미국 상원이 12일(이하 한국시간) 빅3 구제법을 부결한 것을 보면 10년 전 한국 외환위기 때 재벌그룹 구조조정이 떠오른다. 당시 부채가 많아 자금 압박을 받았던 대우그룹은 쌍용차를 인수하는 등 덩치를 키우면서 부채를 더 늘렸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대마불사론을 주장했다. 부채가 많은 회사는 정부에서 내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대우그룹이 부도 나면 관련 금융권 타격이 더 심해 은행이 어쩔 수 없이 대우그룹의 부채 상환을 막아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3일 오전 마감한 뉴욕 증시를 보면 이런 대마불사론이 재연된 듯하다. 구제안 부결이라는 악재를 딛고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0.75%, 2.18% 반등하는 데 성공했다. 미 재무부가 7000억 달러의 부실자산구제계획(TARP)을 활용해 빅3 지원에 나서 파산을 막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빅3는 망할 수 없다는 논리와 상통한다. 구조조정의 대상인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법안 부결이 확실시되는 가운데서도 끝내 임금 협상을 양보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날 백악관도 구제금융 지원을 시사했다.
빅3가 구제금융을 받아 연말 파산이라는 불은 끄더라도 파산 가능성은 여전히 잔존한다. 자동차산업 120년 역사에서 두 차례 세계대전을 제외하고 최악으로 평가되는 이번 위기가 자동차 산업 재편을 가속화할 것이란 분석이다.

도요타도 최근 100만 대 감산
빅3의 지난해 자동차 판매대수는 1760만 대다. GM이 890만 대, 포드가 600만 대, 크라이슬러가 270만 대였다. 빅3의 세계 승용차 시장 점유율은 25∼30%에 달한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GM은 대형 픽업트럭과 중소형 승용차 브랜드인 시보레, 고급차 브랜드인 캐딜락 이외에는 모두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 크라이슬러 역시 독보적인 시장을 확보한 지프 브랜드 이외에 크라이슬러·닷지 브랜드의 통폐합이나 매각을 피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자동차 산업 재편론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마이 히로시(今井弘·76) 전 도요타 미국물류 사장은 “도요타처럼 글로벌 생산기지를 확보한 업체들은 이번 위기 대처가 쉽지 않다”며 “최강 도요타라 하더라도 수요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선 감산 이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도요타의 미국 첫 주재원으로 33년간 미국에서 근무한 그는 “위기가 끝난 뒤 시장을 주도할 친환경차 개발에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해 업체 간 제휴와 인수는 피할 수 없다”며 “이런 차를 잘 만들어 싸게 생산하는 능력을 빨리 확보하는 회사가 시장 재편을 이끌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저비용과 고효율을 앞세워 똑같은 생산 방식으로 동일한 차를 세계 도처에서 만들어왔던 도요타가 위기의 시대에 승자가 되리란 법은 없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미 도요타는 최근 석 달 동안 100만 대를 감산했다.

눈길을 끄는 분석이 하나 더 있다. 최근 이탈리아 피아트의 최고경영자(CEO) 세르지오 마르시온네는 “앞으로 세계 자동차산업은 한 해 550만 대 이상을 생산·판매하는 ‘빅6’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미국과 독일에 각 1개사, 그리고 프랑스·일본의 합작사, 어쩌면 미국 회사 1개 정도가 추가되고 일본과 중국, 그리고 또 다른 유럽 메이커가 생존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마르시온네의 전망과 관련, 도요타·GM·폴크스바겐·포드 및 르노-닛산을 꼽은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혼다와 중국 업체가 후보로 남는다. 럭셔리차가 아닌 대중차 메이커 빅6다. 빅3 가운데는 크라이슬러의 생존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다.

지금의 위기는 패자를 만들고 패자를 공중 분해하거나 승자가 싸게 인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인수합병이나 전략적 제휴가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미 매물로 나온 포드 계열의 볼보, GM 계열의 사브가 당장 대상이다. 한 해 30만 대도 생산하지 못하는 이들 브랜드의 생존 여부는 미지수다. 위기가 만연한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만 믿고 인수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중국 업체의 인수 여지는 남아 있다. 중국 정부는 자동차 산업 육성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심정택 피알에이투지 대표는 “자금이 있더라도 중국 업체들이 빅3를 인수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아이콘인 빅3가 파산하면 했지, 중국 업체에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설령 중국 업체가 빅3의 개별 브랜드를 인수하더라도 철저하게 정부의 보호 아래 성장해 온 만큼 풍토가 다른 미국 기업을 운영할 능력이 있을지 의문시된다”고 덧붙였다. 미국 시장은 워낙 다양한 차종이 존재해 중국차 수만∼수십만 대를 수출할 수 있지만 현지 기업을 인수해 경영하는 것은 다르다는 얘기다. 다만 중국 업체가 빅3 브랜드를 인수할 경우 신차 및 부품 개발 능력이 단시간에 상승할 수 있다. 향후 세계 자동차업계의 강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요코하마국립대 조두섭(경영) 교수는 “앞으로 자동차 산업 경쟁력은 생산 규모가 아니라 실제 얼마를 파는지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대중차 업체가 10곳이 넘는 것은 너무 많다. 반도체나 LCD TV처럼 대중차는 빅6면 충분한 시장 환경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독특한 디자인이나 개성으로 차별해 왔던 업체들의 생존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다만 독일의 벤츠·BMW 같은 럭셔리 브랜드는 이 이론과 거리가 있다. 고유의 브랜드 가치를 지킬 영역이 남아 있다.

GM대우는 위상 높아질 듯
한국의 현대·기아차 역시 빅6에 진입하지 못하리란 법이 없지만 세계 시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냉정하다. 국내에선 장기적으로 빅3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현대·기아차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낙관론의 근거는 위기 때 소형차가 잘 팔려 현대·기아차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소형차(1800㏄ 이하) 생산비중은 47%로 도요타(36%)·GM(34%)보다 크지만 독일 폴크스바겐(60%)보다는 작다.

현대·기아차는 내년 하반기 기아차의 미 조지아 공장(연산 30만 대)이 완공되면 해외 300만 대 생산 체제가 완성된다. 문제는 판매다. 내년 내수를 포함해 400만 대 판매가 쉽지 않다. 산술적으로 200만 대가량의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환율이 강세인 시점에서는 해외 공장의 생산 규모를 줄이고 국내 시설을 100% 가동해야 한다. 도요타도 해외 공장에서 제대로 이익을 내는 곳은 미국·중국뿐이라고 한다. 지난달 현대·기아차의 미국 내 소형차 판매까지 전년에 비해 감소한 것은 시사점을 준다. 일본·독일 업체보다 상품성에서 뒤졌다는 방증이다. 일본 차보다 10∼15% 싼 가격이 위기 상황에서 경쟁우위 요소가 되지 못한 것이다.

현대·기아차가 뒤떨어진 소형차의 상품성을 얼마만큼 이른 시간에 회복할 수 있느냐가 시장 재편에서 승자가 되는 관건이다. GM대우는 GM이 크라이슬러를 합병해 생존할 경우 소형차 개발 및 생산기지로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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