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의 아버지’가 70조원 사기 … 한국 회사도 피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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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29면

버나드 매도프

초대형 금융 스캔들이 미국 월스트리트를 뒤흔들고 있다. 이제나저제나 했던 버블 붕괴 추문이 마침내 불거진 것이다. 주인공은 버나드 매도프(70)다. ‘나스닥의 아버지’로 불리는 월스트리트 거물이다. 나스닥 이사회 의장까지 지냈다.

버나드 매도프 스캔들

피해 규모가 무려 500억 달러(약 70조원)에 이른다. 그의 수법은 전문가들이 ‘폰지(Ponzi) 파이낸싱’이라고 부르는 기법이다. 먼저 돈을 투자한 사람에게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원금과 수익금을 주는 방식이다. 사실상 다단계 기법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투자자 유치가 없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명목상 피해 규모로 보면 이번 사건은 미 역사상 최대 폰지 파이낸싱 스캔들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12일(현지시간) 매도프를 긴급 체포했다. 증권 사기 혐의였다. 그는 불법을 인정했다. 보석금을 내고 곧바로 풀려나기는 했으나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매도프는 월스트리트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꼽혔다. 유대계인 그는 청년 시절 경비 등을 하며 모은 5000달러를 바탕으로 1960년대 스페셜리스트 회사를 설립했다. 증권사를 통해 들어오는 매매 주문을 체결해 주는 회사다. 장내 중개인으로 불린다. 그는 다른 스페셜리스트 회사들이 대형 금융회사에 흡수되는 와중에도 회사를 유지했다. 더 나아가 연기금·헤지·기부금 펀드에서 돈을 유치해 굴려 주는 자산운용사까지 설립·운영했다. 이번 사기 사건의 진앙이 바로 이 자산운용 부문이다.

그는 미 증권업협회(NASD)의 핵심 멤버이고, 나스닥이 현재 수준에 이르게 한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었다. 애플과 썬마이크로시스템즈·시스코·구글 등을 나스닥에 상장하는 데 앞장섰다. 거액을 기부금으로 내놓아 명성도 쌓았다. 이번 스캔들 피해자 가운데 자선재단이 여럿 들어 있다. 개인의 명성을 활용해 자선재단 돈을 끌어들였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3000만 달러를 투자한 대한생명과 사학연금 등 5~6개 회사가 피해를 봤다. 이들은 자금 회수 가능성을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는 바싹 긴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제2의 ‘휘트니 스캔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증권거래소 이사장을 지낸 리처드 휘트니가 투자자의 돈과 거래소의 연기금을 유용한 사실이 38년 드러난 사건이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사건을 빌미로 뉴딜에 반대하는 뉴욕증권거래소를 준공공기관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월스트리트가 루스벨트에 항복했다고 평가했다.

매도프 스캔들도 비슷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시장 규제 강화가 논의되고 있는 와중에 불거져 법규를 강화해야 한다는 쪽의 입지를 단단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몇 년 전 조사를 했으나 문제없다고 결론 내린 미 증권감독 당국에도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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