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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화 비상금’ 1120억 달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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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당장 외환보유액 관리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지난달 외환보유액은 2005억 달러로, 올 들어 627억 달러나 줄었다. 미국과 300억 달러 스와프 협정을 맺은 후 두 달도 안 돼 이미 70억 달러를 가져다 썼다. 곶감 빼먹듯 미국 스와프를 활용할 순 없는 노릇이었는데, 이번 협정 체결로 돈줄이 한층 두터워진 것이다.


비상금이 많다는 게 알려지면서 얻는 효과는 크다. 미국·중국·일본이 한국과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외환시장과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투기 세력도 섣불리 움직이기 어렵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은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도 한국 경제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라며 “대외 신인도가 높아지고 한·중·일 정책 공조가 가속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부적으로는 평상시에 쓸 수 있는 돈이 늘었다는 점이 성과다. 한은이 일본 중앙은행과 평상시에 교환할 수 있는 돈은 지금까지 30억 달러에 불과했다. 이번 협정으로 200억 달러로 늘었다. 나머지 100억 달러는 외환위기처럼 위급한 상황에서만 바꿀 수 있다. 중국과는 지금까지 평상시 인출 가능한 돈이 없었다. 이번 합의로 260억 달러어치의 위안화를 한국이 원하면 언제든 가져올 수 있게 됐다.

일본·중국도 얻은 것이 있다. 한국이 일본 중앙은행에서 엔화를 가져가 외환시장에서 달러로 바꾸게 되면, 엔화 가치가 내려간다. 세계 경기가 안 좋은 데다 엔화 가치까지 높아 고전하고 있는 일본 수출 기업에 희소식이다. 위안화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로 만들고 싶어하는 중국에 원-위안 스와프는 밑질 게 없는 장사다. 우리로선 엔-위안이 아니라 달러로 바로 교환할 수 있는 규모(일본 100억 달러, 중국 40억 달러)가 늘어나지 않은 게 아쉽지만 합의를 위해 불가피했다는 관측이다.

이번 협정 체결은 안전판을 하나 더 확보한 것이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협정 체결에도 12일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는 전날보다 14원 내린 1372.5원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불안 요인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오석태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시장이 과거보다 안정을 찾았다 해서 실물경제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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