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편 잃고 두 아이 의대·유학 보낸 효부 편지 '뭉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식경제부 제공]

  군인인 남편을 잃고 홀로 20년간 두 아이를 번듯하게 키워낸 장한 어머니가 화제다. 제23회 가을맞이편지쓰기대회에서 ‘시부모께 올리는 글’이라는 편지로 대상인 지식경제부장관상을 수상한 이수정(48ㆍ대구 범어동)씨가 주인공이다. 첫째는 의사가 됐고 둘째는 유학 중이다. 이번 대회는 지난 10월부터 한 달간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본부장 정경원)가 초ㆍ중ㆍ고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최해 3만 3000여명이 응모했다.

이씨는 편지에서 “남편이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다 훈련 도중 사고로 숨진 것은 제가 부덕한 탓”이라며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아빠보다 엄마가 더 필요하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너무 안타까웠다”며 절절한 사연을 편지에 담았다. 또 “웬만한 시어른들 같으면 이젠 내 아들이 가고 없는데 며느리는 남이라고 생각하고 냉정하게 대할텐데 두 분께서는 저의 친정 부모님보다 더 저를 챙겨 주셨다”며 “그 이후로 저는 진심으로 어머님과 아버님을 존경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씨는 이번에 받은 상금 150만원으로 시부모 용돈과 둘째 아이 유학 학비를 보태고 나머지는 생활이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편지와 함께 부칠 계획이다. 그는 주변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1년 넘게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희 기자

다음은 이씨의 편지 전문.

시부모께 올리는 글

지난 여름 아이들과 함께 어머님을 찾아 뵌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계절이 가을이네요. 그간 어머님, 아버님께서는 안녕하시온지요? 저와 아이들도 염려해 주시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에 저희가 찾아 뵌 것이 과연 몇 년 만인지? 그새 어머님 머리카락은 완전 백발이 되셨고, 아버님께서는 많이 수척해 지신 것 같아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연로하신 두 분의 모습이 그간 자주 찾아 뵙지 못한 저의 불효로 여겨져 죄스러운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겠습니다.

아범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간 지 어언 이십년이 다 되었네요. 그 때 제 나이는 겨우 서른 두 살이었고 민이가 여섯 살, 준이가 겨우 네 살이었지요. 이제 저는 오십이 넘었고, 민이는 스물여섯, 준이는 스물넷이 되었네요. 아범의 사고 소식을 처음 접하였을 때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아비를 지키지 못하고 혼자 남은 제 자신이 어머님 아버님께 너무나 죄스러웠습니다. 비록 아범은 국가를 지키는 군인으로서 훈련 도중 사고로 인하여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것이 다 제가 부덕한 탓으로 여겨져 무척 괴로웠습니다.

어머님 그 때 제가 울면서 어머님께 드린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아범은 우리 집안의 희망이고 기둥인데 차라리 제가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 같은 존재는 살아 있어도 아무 의미가 없는데 왜 아범이 가고 제가 남아 있는 거죠?”

어머님, 그 때 제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국가에서는 공들여서 키워놓은 유능한 인재를 잃어버린 것이고 우리 집안에서는 집안을 일으킬 똑똑한 아들을 잃어버린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으니까요. 거기에 비하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집안이 잘 되려면 여자가 살아야 한다. 남은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아빠보다 엄마가 더 필요하다.”

저는 어머님의 그 말씀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극한 슬픔 속에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 지요. 웬만한 시어른들 같으면 이젠 내 아들이 가고 없는데 며느리는 남이라고 생각하고 냉정하게 대할 텐데 두 분께서는 저의 친정 부모님보다 더 저를 챙겨 주시고 제 처지를 안타까워 하셨지요. 그 이후로 저는 진심으로 어머님과 아버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매달 약간의 돈을 부쳐드리는 것과 전화로나마 수시로 안부를 여쭙는 것도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두 분께서는 혼자 남은 제가 조금이라도 마음 불편하지 않도록 부담이 될만한 얘기는 일체 하지 않으셨고 돈도 한사코 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전화로 안부를 여쭈면 언제나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 어린 아이들 데리고 네가 고생이 많구나. 고맙고 또 미안하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그 뿐인가요? 매년 보내주시는 고춧가루, 마늘 등 온갖 부식거리를 볼 때마다 어머님, 아버님의 사랑이 듬뿍 느껴져 제 마음이 얼마나 따뜻해지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님, 올해는 민이도 6년간의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있으며 둘째 준이는 교환학생 자격으로 미국에 건너 간지가 한 달이 넘었어요. 지난 여름에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님, 아버님을 찾아뵌 것은 큰 애가 마침 여름 휴가를 받았고 둘째는 미국 들어가기 전에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드리고자 찾아뵌 것이었어요. 물론 두 분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대전 국립묘지의 아범에게도 들렀어요.

‘당신 아이들이 이만큼 자라서 자기들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어요. 당신도 흐뭇하시죠?’ 아이들이 아버지께 절을 올리는 동안 저는 마음속으로 아범에게 이렇게 말하며 지금껏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아이들이 살아가는 걸 잘 지켜봐 달라고 했어요.

아범이 그렇게 가고 난 후 저는 결심했어요. 길지 않은 몇 년을 사는 동안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남편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기에 이제는 제가 저 하늘에 있는 남편에게 받은 사랑을 갚아야 한다고요.

그것이 남편에게서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는 제 의무이자 도리라 여겼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했지요. 만일 지금 제 옆에 남편이 살아 있다면 제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하구요. 아마도 그것은 남은 두 아이들을 잘 키워 달라는 것이 아닐까요? 그 다음엔 어머님, 아버님께 잘 해 드렸으면 하는 바람일거예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잘 키우리라 마음 속으로 다짐했어요. 어린 민이와 준이에게 항상 말하기를 “저 하늘에서 아버지가 너희들을 지켜보고 계셔. 우리 민이, 준이 공부 잘하고 착하게 잘 지내나 하고 말이야” 다행히 아이들은 저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아버지가 기뻐하실 일만 해야 되겠다며 착하게 잘 자라 주었어요. 어릴 때부터 착하고 그저 아파봐야 감기에 걸릴 정도로 건강하게 자라 준 어머님의 손자들이 이제 다 자라서 곧 사회인이 되려고 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제 속을 썩이지 않고 몸과 마음이 튼튼한 청년으로 자라 준 아이들이 한편으론 대견스럽고 한편으론 자랑스럽답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철이 들자 저는 애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어요.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태어난 것에 감사해라. 그리고 이 다음, 사회에 나가 일을 하는 성인이 되었을 때 너희가 받을 것을 사회에 환원해라. 너희보다 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이 사회에, 나아가 국가에 유익한 사람이 되어라.”

저의 이 말에 “네 어머니, 그럴게요” 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을 볼 때 저는 마음속으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답니다. 이게 다 어머님, 아버님께서 오매불망 손주들 걱정해 주시며 늘 잘 되라고 기도해 주시는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전화로 늘 말씀드렸듯이 부디 두 분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범에게 못다 받은 효도를 손주들에게 많이 받으시기 바래요. 저도 앞으로는 더욱 자주 찾아뵐 것을 약속드리며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침, 저녁 쌀쌀한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J-HOT]

▶ "은행원, 아마추어가 '이승엽 연봉' 받는게 말 되나"

▶18년전 연예인들과 '환각 매춘'…박연차의 과거

▶ 홍석천 "月35만원 단칸방 살다 8년만에 40억 모아"

▶ '세계 100대 코스'에 선정된 한국의 골프장

▶ 바람 피운것 아내에게 고백하면 안되는 이유

▶ 김성환 큰아들 결혼식 하객1500명 여의도 일대 마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