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대통령과 장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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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워싱턴 정치'를 한동안 지켜보면서 항상 부럽다고 느낀 것 중의 하나가 대통령과 장관의 관계다.장관은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임명한다.그러나 우리처럼'아무나'임명하지는 않는다.'아무나'임명할 수가 없다.개인으로서,공인(公人)으로

서 사회적 검증을 반드시 거친다.물망에 오르면 연방수사국(FBI)이 행적을 스크린한다.심지어 병력(病歷)등 건강상태까지 들여다본다.여과를 거쳐 대통령이 지명하면 상원의 인준청문회가 기다린다.술을 잘 마신다는 이유로 국방장관 지명자의

인준이 거부된 경우도 있었다.술김에 상황을 오판(誤判)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더욱 돋보이는 것은 장관을 그만둘 때다.대통령과 뜻이 맞지 않거나 개인사정으로 물러날 때 떳떳이,그리고 보기 좋게 물러난다.대통령 스스로 물러나는 장관과 함께 백악관 브리핑 룸에 나와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아쉬움을 표한다.장관

역시 그만두는 이유와 감회를 피력하고 대통령과 국민에게 감사를 드린다.통고 한마디로 목이 달아나고,전.현직 장관들이 툭하면 쇠고랑을 차는 우리현실에서 부럽기 짝이 없다.

장관에 대한 평가절하는 극에 달한 느낌이다.일시 거쳐가는'과객'(過客)에다 정치적 희생양,심지어 한번 쓰고 버리는'일회용 소모품'으로 취급받는다.장관은 국가의 동량(棟梁)이다.그 정도의 재목으로 키워내는데 사회적으로,국가적으로 들

인 공과 투자도 무시하지 못한다.그럼에도 한번 장관을 지내면 능력을 불문하고'3공''5공'또는'6공'사람으로 낙인찍혀 사회적으로'폐기처분'된다.인재의 층이 얇고,기피인물은 많고,개각이 너무 잦다보니 인적 자원은 고갈된다.그 결과'아

무나' 장관이 된다.권력의 비호를 떠나서는 홀로 설 역량이 없는 그저그런 장관들이 많았다는 얘기도 된다.

장관은 역량과'그릇'을 요한다.선거과정에서 당선을 도운 측근이나 참모는 어디까지나 측근이요,참모다.논공행상식 측근 봐주기나 차관들을 자동승진시켜 메우는 자리는 아니다.직업공무원은 차관이'천장'이고 장관은 특정 부처의 차원을 넘어선

다.어느 부처에서 잔뼈가 굵고,실무에 능하고,청렴하다 해서 곧 훌륭한 장관감은 아니다.장관은 관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국무위원으로서의 자질과 안목이 중요하다.

선진사회에서 장관은 각 분야에서 성공한 프로들이 주류를 이룬다.장관직은 개인적 명예와 국가에 대한 봉사의 기회다.장관의 연봉은 이들이 민간에서 받던 연봉에 비하면 형편없다.그러나 장관을 거치고 다시 복귀하면 정부에서 일한 경력이

프리미엄으로 붙어 연봉은 껑충 뛴다.장관을 그만두면 자기 분야에서 더욱 원숙하게 일할 수 있다.장관 재임중에 연명(延命)이나 보신을 위해 소신을 굽히고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미국에서 물러나는 장관들이 가장 많이 내세우는 이유는“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하기 좋은 인사말이 아니다.실제 장관이 된 후 워싱턴의 호텔에 혼자 장기투숙하며 주말에 집을 다녀오는'주말아빠'들도 없지 않다.

'깨끗하고 효율적인 정부'로 이름난 싱가포르는 총리및 장관들의 연봉이 미국의 4배,일본의 배가 넘는다.공직봉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다'국가적으로 부패보다는 싸게 먹힌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문민정부 4년동안의 잦은 개각으로 인적 자원이 낭비되고 일부 쓸만한 인사들은 각종'낙인'이 찍혀 인물난은 극심하다고 한다.'인사실험'은 인재의 사회적 낭비를 부를 뿐이다.부문별 전략가들을 키워 국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 풀(

pool)형성에 초당적으로 나설 때다.아울러 사회적 검증장치도 필요하다.

장관자리는'정치꾼'들의 전리품이 아니다.장관이 장관답고 사회적 존경을 받을 때 국정운영은 제 궤도에 들어선다.

(변상근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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