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32년간 한국인이라 여기며 살았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그동안 저는 저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음식도 한국음식밖에 할 줄 몰랐고, 동네에서도 저를 쿠리(한국인)라고 불렀습니다."

32년을 주 카이로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지난달 정년퇴직한 구마 사이드 칼릴(60)은 "그동안 한국대사관과 집만을 오가며 살아왔다"면서 "갑자기 내 삶에서 '한국'이 빠져나가니 허탈함을 달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사관 직원들 사이에서 '구마 할아버지'로 통했던 그는 청소에서부터 요리, 각종 행사 준비에 이르기까지 대사관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왔다. 몇년 전부터는 한국 외교관들에게 점심을 해줬다. 이를 위해 대사 관저의 주방 아줌마에게서 잡채.불고기.갈비.새우튀김 등을 만드는 법도 배웠다.

구마는 1972년 2월 당시 주 카이로 한국총영사관에 청소를 담당하는 임시직으로 입사해 다음해 7월 정식 고용됐다. 3개월 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징집돼 6개월을 전장에서 보낸 뒤 다시 한국대사관으로 복귀했다. 이집트 정부는 전후 참전했던 사람들에게 공무원직을 주었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다.

"내가 전선에 나가 있는 동안 당시 최운상 총영사와 정무삼 영사가 월급도 챙겨주고 우리 집까지 찾아와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어요. 그때부터 한국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됐고, 영원히 한국대사관에서 일하겠다고 결심했지요."

구마는 "따스한 정(情)이 한국인들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95년 외무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때 이집트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당시 공로명 장관의 부인이 그를 집으로 초청해 식사를 함께 한 것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반면에 일을 너무 많이, 그리고 급히 하는 것은 한국인들의 단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일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한편으로는 후배 이집트 고용인들의 불평을 달래느라 고생도 꽤 했다는 그는 "이집트 고용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이 '빨리 빨리'라는 단어"라며 웃었다.

그는 95년 총영사관에서 대사관으로 승격했을 때가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며 "당시 정태익 대사를 비롯한 외교관들이 철야작업을 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데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고 회상했다. 구마는 출가한 딸과 분가한 장남을 제외한 아들 네명 및 손자들과 함께 카이로에서 살고 있다. 아들 가운데 한명은 대사관저에서 일하며 아버지의 길을 잇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