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a가 캐논 작업장 숱한 명인 낳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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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캐논은 일본에서 도요타와 함께 업무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두 기업은 일본 버블 경제가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동안 혁신을 발판으로 성장을 거듭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캐논 본사의 이치카와 준지(市川潤二·65·사진) 광학기기 총괄 전무는 “도요타와 캐논의 생산방식은 낭비를 없애고 작업자의 자발적인 업무개선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그는 10일 지식경제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2008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에서 캐논의 혁신활동을 발표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생산분야의 최고전문가다.

캐논은 40여 년 전 도요타 생산방식(TPS)을 전파하는 야마다 히토시 컨설턴트의 지도를 받으면서 혁신기업으로 거듭났다.

“당시만 해도 수준이 다른 작업자들이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복사기를 조립했다. 컨베이어는 생산성이 가장 떨어지는 사람에 맞춰진다. 이런 낭비를 없애기 위해 능력이 엇비슷한 사람을 뽑아 작업조를 편성했다. 컨베이어 대신 팀으로 묶어 각각 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캐논은 이를 셀(Cell) 생산방식이라 부른다. 셀 단위는 제품에 따라 한 사람부터 40명까지다. 보통 3, 4명이 가장 많다. 예를 들어 한 시간에 다섯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작업자 다섯 명으로 짜인 팀, 넉 대를 생산하는 팀 등 이런 식으로 능력에 따라 팀을 편성한다. 한 달 후 작업이 익숙해지면 각 팀에서 가장 뛰어난 한 명을 뽑아 여섯 대를 조립하는 팀을 만든다. 또 한 달 후에는 각 팀에서 한 사람을 빼내 다른 신제품 조립팀을 만든다. 한 사람이 빠지려면 팀원들이 업무를 개선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3000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복사기를 혼자서 조립하는 최고의 명인(수퍼 마이스터)이 매년 수명씩 탄생한다.

지식경제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0일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개최한 ‘기업 생태계 경쟁력과 상생협력 국제 콘퍼런스’ 행사장. 앞줄 왼쪽부터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한승수 국무총리,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임채민 지식경제부 차관, 이기태 삼성전자 부회장, 마르코 이안시티 하버드대 교수. [뉴시스]


그는 제거해야 할 대표적인 낭비를 세 가지 꼽는다. ▶여유가 많은 작업자의 낭비 ▶부품 운반 과정의 낭비 ▶곳곳에 조립품이 정체돼 있는 낭비다.

작업자 스스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업무강도를 높이는 것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는 “매 연말 사장이 수십 명의 명인을 저녁 회식에 초청해 어떤 방식으로 개선을 해 명인이 됐느냐고 묻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내용이 전파되고 캐논 직원들은 명인이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업무혁신에 몰두한다”고 밝혔다.

이치카와는 “사람의 본성은 스스로 업무를 개선해 생산성이 높아지면 일이 더 즐거워진다. 금전적 보상을 받기 위해서 업무를 혁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개선에는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있다. 정년을 보장하는 일본식 종신고용과 최고경영진의 의지다.

캐논은 지난달 파견사원 2000명을 감원했다. 이에 대해 “감원이 아니라 계약이 만료된 것을 해지한 것뿐”이라며 “캐논은 불황이라도 정사원은 단 한 명도 감원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고용안정이 개선의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

그는 생산성 개선은 ‘톱 다운’으로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최고경영진이 현장을 잘 알아야 제대로 개선을 지시할 수 있고 혁신은 최고경영자가 솔선수범하면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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