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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71. 헤이데이(전성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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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세계 팬클럽대회가 열린 프랑스 망통에서의 필자.

모윤숙씨가 프랑스 망통에서 열리는 세계 펜클럽대회에 가자고 했다. 나는 전광용 교수의 권유로 소설 부문 회원이 돼 있었다.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서울신문에 '엽전'이라는 연재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MBC-TV에는 '아빠의 얼굴'이라는 걸 쓰기 시작했고요."

"미리 써주고 가면 될 것 아니야? 모처럼 기회인데…. 2주일이면 돼. 내년엔 우리나라에서 열기로 돼 있어서 왕창 가서 기세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단 말이야."

유럽은 항상 꿈의 땅이다. 마음이 기울었다. 신범식 문공부 장관이 부르기에 찾아갔더니 300달러를 주었다. 서울신문 장태환 사장한테는 미리 2주일분을 써놓고 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MBC의 표재순이 난색을 표했다. "걱정을 말아요. 내가 프랑스에서 써 보내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이용찬씨가 대필할거요. 스토리를 다 얘기해주고 갈테니까." 그리고는 떠나는 전날까지 골프를 쳤다.

서울을 떠날 때부터 비행기 안에서 한 무리의 꼬마들이 울어댔다. 도쿄.앵커리지를 거쳐 북극 상공을 지날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유럽으로 입양되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달래는 프랑스인 신부, 이 아이 저 아이를 번갈아 돌보는 한국인 수녀. 나는 슬픔을 억누르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30여년 전의 그들이 지금 음악가나 학자가 돼 모국을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암스테르담에서 이 아이들과 헤어졌다. 아이들은 여러 나라로 흩어진다고 했다.

알프스 상공을 지나 니스로, 거기에서 지중해변을 달려 모나코를 통과해 망통에 도착했다. 일행은 모두 메디테라네호텔에 묵었다. 펜대회의 집행위원회에 다녀온 모윤숙 여사가 새파랗게 질렸다. "큰일났어요. 동유럽 어느 나라가 내년 서울대회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분단국가의 한쪽에는 못 가겠다는 거예요. 백철 위원장은 한마디 항의도 못했어요." 중론 끝에 호소문을 영어.프랑스어로 써 나눠주기로 했다. 내게 그 호소문을 쓰라는 것이 아닌가. 꿈 같은 지중해변에 와서 지옥 같은 밤을 새웠다. 영역은 파리문화원 이재현 원장이, 불역은 베로니크 성이라는 수녀가 해냈다. 밤을 꼬박 새우고 간신히 팸플릿을 만들어 모나코 의사당에서 나오는 각국 대표들에게 나눠줬다. 무심코 나오던 차범석씨에게 "이거 나눠주라!"고 호통을 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계 펜대회 의장은 마릴린 먼로의 남편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극작가가 더 통할까. 하얀 양복에 빨간 티셔츠를 입은 그는 다리를 꼬고 벌렁 누운 듯이 앉아 있었다. 정장을 한 영국 작가들과 대조를 이뤘다. 백철.조병화.전숙희.한무숙.조경희.홍윤숙씨 등은 코르시카로 갔는데, 나는 제네바로 향했다. 정일영 스위스 대사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작한 유럽 유람. 파리.런던.로마.아테네. 그때 겪은 희비극은 언젠가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 한국에 돌아오니 '한운사 증발 연속극.연재소설 펑크'라는 기사가 여기저기 실려 있었다. 이듬해 우리는 워커힐에서 인상적인 세계 펜대회를 열었다.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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