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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코리안 드리밍' 입국자 늘고 예술展 발길 잦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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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아프리카는 멀리 있다. 서울에서 하루종일 비행기를 타고 가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물리적인 거리만 먼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실재하는 대륙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6대주중 두번째로 크지만 고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아프리카의 역사는 16세기 이후 유럽열강의 ‘사냥감’으로 잠깐 모습을 비칠 뿐이다.

그런데도 아프리카는 이상하게 친숙하다. 추락한 비행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백인소년이 원주민과 야수들을 굽어살피는 내용의 TV시리즈 ‘타잔’,어린이 자연교육프로로 권장된 ‘동물의 왕국’,그리고 ‘진기명기’류의 숱한 풍물프로들을 통해 우리는 이미 아프리카를 간접 체험했다. 8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나이지리아 작가 월레 소잉카를 모르는 사람도 타잔은 다 안다. 타잔이 목청 높여 세계에 전파한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문명의 계도를 필요로 하는 원시와 야만의 땅’이다. <관계기사 46면>

지금까지 국내 TV프로들이 아프리카를 다루는 방식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주로 아프리카의 풍물을 ‘정상과 다르다’는 관점에서 화젯거리로 부각시켜왔다. 거기에는 아프리카 문화의 뿌리를 더듬으려는 노력도 없고, 60년대이후 대거 독립한 신생대륙의 한세대에 걸친 고민과 현실을 짚어보려는 시도도 없다.

그러나 2~3년전부터 아프리카는 우리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공예품을 파는 전문점이 생기는가 하면 아프리카 문화예술전이 잇따르고 실제로 TV속에서나 보던 아프리카 사람들을 주변에서 볼수 있게 됐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백화점 9층 현대아트 갤러리에서는 지금 아프리카 조각전이 열리고 있다. 주최는 서린산업. 사장인 유관철(39)씨는 무역회사에 근무하며 아프리카를 오가다 8년전부터 조각을 비롯한 문화예술품을 모았다. 처음엔 취미 차원이었지만 자꾸 수집하면서 아프리카 예술에 빠져들었다. 유씨는 4년전부터 1년에 두번씩 자신의 소장품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모두 일곱번의 전시회를 여는 동안 관람객의 주된 반응은 “아프리카에도 이런 조각품이 있었나”하는 놀라움과 관심이었다.

유씨는 아프리카의 문화도 알리고 사업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지난해 10월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케냐에 현지 조각가와 공예가들 10여명을 모아 공방을 만들었다. 유씨의 계획은 이 공방을 거점으로 기존의 문화예술품 수집뿐만 아니라 직물등 아프리카적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유럽·미주지역에 수출한다는 것. 18일 첫 사업으로 연 이번 전시회(9일까지)는 하루 5백~1천여명이 다녀가고 조각 20여점, 공예소품 1백여점이 팔려나가는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열기를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의 증폭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강남지역의 중산층들 사이에서 부쩍 높아진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아프리카로까지 눈을 돌리게 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한꺼번에 키지석(흑단과 함께 아프리카 조각의 2대 원료로 아이보리 색을 띠고 있다)조각 4점을 한꺼번에 산 주부 김혜순(43)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아프리카 조각을 처음 본다는 그는 “토속적인 분위기를 예상하고 왔다가 전혀 다른 서구풍의 조각이 많아 놀랐다”며 “거실에 둘까 했는데 토속적 풍으로는 분위기를 맞추기가 어려워 한점도 안샀다”고 말한다.

전시회장에 진열된 조각품은 몇만원에서 억대까지 값이 다양하다. 공예 소품은 대개 10만원 미만. 사실성을 강조한 공예품은 아프리카풍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만 조각은 변형이 심한 반추상이 많다. 사장 유씨는 “피카소 같은 입체파나 표현주의는 아프리카 조각의 조형에서 영감을 강하게 받은 사조인데도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같다”며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아프리카 예술애호가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조만간 문을 여는 과천 뉴코아 백화점의 상설매장 1호점을 시작으로 전국 유명백화점으로 매장을 넓힐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공예품의 경우는 조각품보다 훨씬 먼저 선보이기 시작했다. 몇년전부터 수시로 백화점에서 아프리카 풍물전이 열리고 있고, 올 1월에는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 아프리카 팬시용품 전문점 그린데코가 문을 열었다. 사장 김영복(38)씨는“주로 인테리어나 디스플레이하는 사람이 많이 찾고 아프리카를 다녀온 젊은층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특히 요즘은 행운과 축복을 가져다준다는 주술인형이 선물용으로 잘 나간다고 한다.

이보다 더 주변에서 아프리카를 실감케 해주는 것은 아프리카인의 서울 진입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대사관 직원이 아니면 상주하는 아프리카인을 만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현재 이화여대 어학당에는 6명의 아프리카 사람이 다니고 있다. 이중 가나에서 선교하러온 온 프린스(35)는 아내와 함께 서울에 살며 영어성경학교 선생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가나의 한 부족장의 아들로 자신의 이름(프린스)이 곧 자신의 신분이라고 했다.

이화어학당의 안영숙씨는 “90년대 초반부터 아프리카인이 등록하기 시작해 조금씩 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외국인을 위한 어학당이 있는 서울대·연세대·서강대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학기에 평균 서너명 정도가 등록한다는 것. 외국인을 국내로 초청해 장학금을 지급해온 국제교류재단에서도 93년부터는 아프리카인을 선발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모두 3명을 초청했다.

오추바에 따르면 일요일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주한 아프리카인 모임에는 50명 정도가 참석한다. 취재중 만난 아프리카인들이 추정하는 주한 아프리카인 수는 외교관을 제외하고 2백∼5백명선. 이중에는 마석·안산등에 거주하는 불법체류 노동자들도 상당수 있다. 이들 아프리카인들은 또 하나의 벽과 만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검은 피부와 아프리카에 대해 한국인들이 갖는 싸늘한 태도를 지적한다. ‘타잔’보다 더 거만하다는 것이다. 몸과 몸이 부딪칠 때 생길 수 있는 갈등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다고나 할까. 이제 더이상 아프리카는 멀리 있는 상상속의 대륙이 아니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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