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지주회사 설립 한국의 실태-경제력 더욱 집중된다 불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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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본이 지주(持株)회사 설립을 자유화하기로 함에 따라 한국은 세계에서 지주회사를 법으로 금지하는 유일한 나라가 되게 됐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지주회사 허용문제가 뜨거운 논란거리로 떠오를 전망이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게 그동안의 정부입장이었으며,이런 입장은 일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대로다.

서동원(徐東源)공정거래위원회 독점국장은“기업경영이나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하기는 어렵다”면서“중.장기적 과제로나 검토해 볼 사안”이라고 밝혔다.

경제적으로 성숙단계인 일본과 달리 기업주의 경영독점이 심하고 소액주주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국내 기업풍토에서는 무리라는 것이다.

그는 또 당장 지주회사를 허용할 경우 작은 기업이 외부에서 돈을 빌려 큰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경영권을 지배하는 사례가 많아져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를 초래하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입장에 대해 재계의 반발도 만만찮다.

전경련은 지난해말 발표한 규제완화 1백대 과제'의 하나로 지주회사 설립허용을 들었다.

급변하는 국내외 경영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면 기업이 다각화와 변신을 추진해야 하는데 지주회사 설립불허등의 규제가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승철(李承哲)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출자총액제한등 대기업에 대한 기존규제가 있기 때문에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한다 해도 경제력집중이 심화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86년말까지는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가 없었다.

그러다 87년4월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경제력집중 억제수단의 하나로 지주회사 설립금지조항이 도입된 것.현재 특정기업이 자산 총액의 50% 이상을 다른 회사 주식으로 소유할 경우 이를 지주회사로 규정하고 있다.

제도 시행후 지금까지 지주회사로 판명돼 시정조치를 받은 경우는 모두 21건.90년 동원산업이 자산의 절반 이상을 한신증권(지금의 동원증권)등 7개 계열사 주식으로 갖고 있다가 이를 시정받았다.

최근에는 한화종금 소유권분쟁에 휘말린 한화그룹이 상대방인 우학그룹을,항도종금도 지분싸움 상대인 효진을 같은 이유로 각각 공정위에 신고해 놓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어쨌든 지주회사 허용문제는 인수.합병(M&A)이 날로 활성화되고 금융개혁에 따른 금융기관의 지배구조 변화가 다가오면서 더욱 첨예한 현안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부 일각에서는 금융기관의 경우 다른 규제가 많으므로 지주회사를 허용해도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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