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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깊어가는 내년 성장률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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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8일 한국은행은 9일로 예정했던 ‘2009년 경제 성장률 전망’ 발표를 갑자기 연기했다. 11일 열릴 금융통화위원회 이후에나 하겠다고 밝혔다. 금통위 회의에 앞서 내년 성장률 전망을 발표하면 금리정책 운용의 폭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시장의 해석은 달랐다. 한 채권담당 애널리스트는 “한은이 성장률 발표를 연기한 건 내년 전망치가 낮게 나오면 금통위가 금리를 더 낮춰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년 경제 성장률을 놓고 정부와 한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외 금융회사나 연구기관들마다 전망이 제각각이다. 편차도 크다. -3%~4%. 무려 7%포인트나 난다. 최저는 UBS증권이 지난달에 전망한 -3%다. 최고는 기획재정부가 전망한 4%다.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8일 “내년 경제성장률이 2%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전망치가 제각각인 것은 그만큼 내년 전망이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주요 기관이 예상하는 한국의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으로 골드먼삭스·모건스탠리·메릴린치 등 7개 주요 투자은행이 전망한 내년 경제성장률은 평균 1.2%다. 9월 4.3%, 10월 3% 전망을 거쳐 1%대로 낮아졌다. 한국만 낮아진 것은 아니다. 대만이나 싱가포르는 마이너스 성장 전망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가 4% 성장 전망을 아직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목표치를 제시해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하자는 메시지를 담아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재정부는 지난달 3일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을 통해 감세와 공공지출 확대를 통해 총 33조원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강만수 장관은 “이런 대책이 없다면 성장률은 3%에 그치겠지만 정부가 노력을 하는 만큼 4% 달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땀을 쏟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하지만 목표가 현실과 동떨어지면 실망이 더 커질 수 있다.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업 문제는 벌써 심각해지고 있다. 10월에 새로 생긴 일자리 수는 9만7000개에 그쳤다. 3년8개월 만에 가장 적었다. 이 추세면 내년에는 월평균 12만 개 정도 늘어나는 데 그칠 전망이다. 6년 만의 최소다. 4% 성장해야 일자리가 20만 개 정도 생기는데 벌써부터 버거워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연간 1%포인트 성장을 이루면 6만~8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

내년에는 수출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한국이 수출해야 할 나라들의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은 한국의 큰 시장인 미국(-0.7%), 일본(-0.2%), 유럽연합(-0.5%)의 내년 성장률을 모두 마이너스로 전망했다.

수출이 위축되면 내수에 기대를 걸어야 하지만 전망은 더 어둡다. 건설·설비투자는 올 9월까지 0.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실상 제자리 걸음이다. 재정부는 이달 말께 이런 여건을 고려해 내년도 성장률을 수정, 발표할 예정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기존 모델로 성장률을 예측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전대미문인 상황”이라며 “성장률 수치에 연연하지 말고 내실 있는 대책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금리를 더 내려 경기를 떠받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윤·김영훈 기자


◆경제성장률(실질)=일정 기간 동안 국민경제(투자·산출량·국민소득)의 규모가 얼마나 커졌는가를 보여주는 수치. 이 수치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내년도 기업이나 개인의 살림살이 형편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률이 올라간다는 것은 경제가 잘 돌아 기업이 성장하고, 가계의 형편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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