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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문하생 중국, 스승을 넘보다

중앙선데이

입력

역전된 위상, 무시할 수 없는 성과, 불확실한 회담 미래…. 지난 4~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5차 미·중 경제전략회담(SED)이 남긴 잔상이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과 왕치산(王岐山) 중국 부총리는 5일 회담을 마치고 “생산적이고 유익했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의 말대로 5차 회담에선 구체적 성과가 나왔다. 두 나라 수출입은행이 200억 달러를 조성해 수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글로벌 교역이 금융위기로 위축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또 중국 국부펀드의 미국 투자를 미 정부가 환영하기로 했다. 중국산 불량식품 사건을 의식해 식품 안전성도 높이기로 합의했다. 내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 물러날 폴슨에게 중국이 준 전별금이라고 할 만큼 적잖은 성과다.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측면이 엿보인다. 양국 지위의 역전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 친중파인 폴슨이 2006년 처음으로 이 회담을 시작했다. 말이 회담이지 내면을 들여다보면 미국이 중국을 한 수 지도하는 성격이 강했다. 미국이 자유시장경제가 무엇인지 가르치면서 위안화 가치절상이라는 당면 목표를 꾀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올 상반기에 열린 4차 회담까지 이어졌다.

지난 9월이 분수령이었다. 자본주의 스승을 자임했던 미국이 금융위기로 흔들리고,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가장 많은 돈을 꿔준 나라로 떠올랐다. 중국은 외환보유액 2조 달러의 60%인 1조2000억 달러를 미 재무부 채권과 모기지 관련 자산에 투자했다. 중국은 회담 전부터 사뭇 당당한 태도를 내비쳤다. 중국 관료들은 “미 정부가 (금융위기에 대응하면서) 최대 채권국인 중국의 이익을 감안해야 한다”고 분위기를 잡았다. 1980년대 남미 외채위기와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와중에 미 재무부 관료들이 보인 태도와 비슷했다.

내부 상흔(금융위기)을 치유하기 바쁜 폴슨은 관계 역전을 인정하는 태도였다. 최근 갑작스럽게 약세를 보인 위안화 가치 문제를 지적하기는 했지만 중국 정부가 그동안 절상을 위해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또 중국과 주요 이머징 국가가 선진국이 주축이 된 금융안정포럼(FSF)에 가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글로벌 금융 지형에서 중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SED가 내년에도 이어질지 불투명하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기간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목하며 강력히 비판했다. 선거용 발언이라고 치부할 순 있지만 그 비판 때문에 SED가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SED가 계속되기를 희망했다. “고위급 회담이 안정적으로 개최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은 폴슨이 SED 참석차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동안 워싱턴을 찾았다. 그는 차기 재무장관인 티머시 가이트너와 이번 주 중 만날 예정이다. ‘워싱턴 30인위원회(G30)’의 멤버로 호흡을 맞춰 온 두 사람은 오바마 정권에서 미·중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지 의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오마바가 SED를 이어받아 중국과의 대화 채널로 이용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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