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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빼야 무대에 설 수 있는 뚱보 오페라 가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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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런던의 한 레스토랑.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녹음을 하던 중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 바리톤 티토 곱비 등과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칼라스가 EMI 레이블로 내놓은 첫 오페라 전곡 음반에 참가했던 연주자들이다.

세라핀은 칼라스에게 살이 더 찌면 앞으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를 거라고 충고했다. 옆에 있던 곱비가 식당 출입구 쪽에 체중계가 있는 걸 보았다고 거들었다. 칼라스는 잘 먹어야 노래도 잘할 수 있고, 자기는 남들이 걱정할 만큼 뚱뚱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식사를 끝낸 일행은 모두 체중계 앞으로 몰려갔다.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체중계 위에 올라선 칼라스는 숫자를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얼굴이 빨개진 칼라스는 코트와 구두를 벗어 놓고 다시 체중계에 올랐지만 별 차이는 없었다. 칼라스의 당시 몸무게는 90㎏이었다.

이듬해 곱비가 극장을 막 나서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날씬하고 어여쁜 아가씨가 자기를 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 곱비는 그냥 여성 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눈치를 보니 아가씨가 자기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이젠 제 모습이 어때요?”라고 묻기까지 했다. 그녀는 불과 몇 달 만에 체중을 30㎏이나 감량한 칼라스였다. 그는 날씬해진 몸매 덕분에 세계적 디바로 우뚝 섰다. 일부 오페라 애호가들은 칼라스의 목소리가 변했다고 했지만,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결혼했고 오페라 무대를 넘어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19~20세기엔 몸매가 뚱뚱한 오페라 가수라도 노래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그렇다고 ‘뚱뚱한 가수’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853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소프라노 루이자 테트라치니가 맡았다. 공연이 끝난 뒤 한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그녀는 폐병이 아니라 수종증(온몸이 부어오르는 병)에 걸린 것 같았다.”

TVㆍDVD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오페라 무대의 주도권이 가수ㆍ지휘자를 거쳐 연출가에게 넘어가면서 극중 배역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나 신체조건을 갖고 있는 가수가 캐스팅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최근 유럽에선 현대 의상을 입고 노래하는 현대 버전이 유행하는 데다 주역 가수들에게도 쉴 새 없이 움직이도록 요구하는 추세다.

136㎏의 몸무게를 이끌면서 무대에 섰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턱수염을 기른 것은 얼굴이 실제보다 작아보이기 위해서였다. 파바로티도 살을 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가능하면 날씬하고 잘 생긴 가수를 선호하는 것은 젊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홈페이지에는 “우리 가수들은 패션 모델을 해도 될 정도입니다”라는 홍보 문구를 올려놓았다.

2004년 6월 런던 로열 오페라는 R 슈트라우스의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 주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던 미국 소프라노 드보라 보이트에게 출연 계약 취소를 통보했다. 현대식 의상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극장 측은 무명 가수이지만 날씬한 소프라노 안네 슈바네빌름을 대신 캐스팅했다.

보이트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코벤트가든 측이 내 큰 엉덩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솔직히 털어 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보이트는 100㎏에 가까운 몸무게로 고민하던 터였다. 무릎 관절에 통증을 느꼈고 고혈압과 당뇨도 걱정되던 참이었다. 그나마 다이어트와 운동으로 38㎏를 뺀 게 그 정도였다. 뉴욕 타임스는 사설까지 동원해 ‘몸짱’만 선호하는 유럽 오페라계의 풍토를 문제삼았다. 오페라 가수의 연기는 의상이 아니라 목소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보이트는 미국 태생으로 1990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98년 파바로티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그너 전문 가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간판 스타다. 보이트는 2003년 5월 메트에서 ‘낙소스 섬의 아드리아드네’에 출연했었다.

코벤트가든 측은 프로덕션이 현대식 버전이라 보이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길다란 천을 휘감은 듯한 고대 그리스 시대의 겉옷이 아닌 몸매가 완전히 드러나는 검정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런던 로열 오페라의 캐스팅 감독 피터 카토나는“많은 오페라 가수들이 자신의 직업을 과식을 위한 핑계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몸집과 성량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도 했다. 보이트도 나중엔 자신이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었다고 고백했다. 보이트는 바그너 성지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도 입성하지 못했다. 페스티벌 측이 몇해 전 ‘방랑하는 화란인’의 젠타 역을 제의하면서 “먼저 전신 사진부터 보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보이트는 비만 수술로 유명한 뉴욕 맨해튼 레녹스 힐 병원에 입원해 3시간 30분간 위장관 우회 수술을 받고 45㎏를 감량하는데 성공했다. 몸무게를 63㎏으로 줄였다. 보이트의 위는 부피가 30㎖로 줄어들어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을 느낀다. 음식을 먹을 때도 천천히 꼭꼭 씹어야 한다. 허리 사이즈가 한때 약 66인치까지 나갔었는데 32인치로 줄었다.

2004년 11월 바그너의‘탄호이저’중 엘리자베트 역으로 뉴욕 메트 무대에 선 보이트는 뜻밖에 자신의 노래에 대한 반응이 좋게 나오자, 수술 사실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보이트는 살을 뺀 다음 2007~2008년 시즌 코벤트가든 무대에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로 복귀했다.

소프라노 제시 노먼, 몽세라 카바예 등은 몸무게 때문에 콘서트만 고집할 뿐 오페라 무대엔 잘 서지 않는다. 물론 아그네스 발차, 캐슬린 배틀, 조안 서덜랜드, 테레사 스트라타 등 날씬한 소프라노도 있다. 하지만 오페라 가수, 특히 소프라노 하면 뚱뚱한 여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뚱뚱한 여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오페라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The opera ain‘t over until the fat lady sings)라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다.

성악가, 좁게 말해서 오페라 가수들은 왜 뚱뚱할까. 이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후두(발성 기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지방 조직이 두터울수록 발성할 때 공명이 잘 되고 더 윤택한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전체 몸집을 불리지 않고서는 목 주변의 지방 조직을 불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뚱뚱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오페라 가수는 보통 사람보다 횡격막이 더 강하다. 오페라 극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꿰뚫을 정도의 소리를 내려면 가슴둘레를 키워야 한다. 복식 호흡을 하다보면 횡격막이 잘 늘어 날 수 있게 몸집도 불어나게 마련이다. 오페라 가수에겐 몸 자체가 악기다. 몸집이 클수록 울림통도 커진다. 가슴둘레, 흉곽, 목두께, 입술이 클수록 소리도 커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셋째, 오페라 가수들이 횡격막을 자주 사용하면서 복식 호흡을 하다보면 허파 세포에서 렙틴이라는 단백질을 많이 만들어낸다. 렙틴은 식욕 조절과 관련된 체지방 세포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이다. 노래를 하다보면 식욕이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넷째, 오페라 가수가 노래하는 행위 자체가 가슴둘레가 커지게 한다. 그래서 오페라 가수의 몸집은 실제보다 더 뚱뚱하게 보인다는 주장도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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