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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야쿠자 보스 책임 물은 시각장애인 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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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
고바야시 데루유키 지음, 여영학 옮김
강, 352쪽, 1만2000원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인 변호사 다케시타 요시키의 평전이다. 스모를 좋아했던 소년 다케시타는 1966년 외상성 망막 박리로 실명 판정을 받는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래도 주저앉진 않았다. 안마와 침술을 배웠던 시각장애인학교 시절. “일반 고등학교 친구들은 입시전쟁을 한탄하고 있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며 자부심을 가졌던 다케시타다. ‘장래희망 변호사’도 포기하지 않았다. 81년 아홉 번째 도전한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권변호사로 자리매김한다.

다케시타의 이야기를 더욱 짜릿한 성공담으로 만드는 요소는 또 있다. 대학 점자동호회에서 만나 스물한 살 때 결혼한 비장애인 아내 도시코와의 사랑과 아들·딸을 변호사·의사로 키워낸 ‘세속적’ 자랑거리 등이다. 또 경찰관을 살해한 야쿠자 말단 조직원의 책임을 야쿠자 최고 보스에게 묻는 사건을 맡아 승소를 이끌어낸 일화는 그를 영웅으로 끌어올리기 충분했다.

‘위대한 자원봉사의 힘’도 이야기의 또 다른 주제다. 시각장애인학교에 다닐 때부터 다케시타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봉사자들은 책을 읽어주고, 산책을 함께했고, 교과서와 참고서를 녹음한 테이프를 만들어 보내줬다. 다케시타가 점자 사법시험 제도 도입을 이끌어낸 것도 일본 시민사회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장애인 성공담의 ‘단골 주역’인 희생적인 어머니 자리를 사회 봉사 시스템이 대신한 것이다. 일본보다 무려 27년 늦게 첫 시각장애 사법고시 합격자를 배출한 우리나라에 시사점이 큰 대목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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