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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탈북>黃비서 남한간첩으로 몰 속셈-"갈테면 가라" 北의도는 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북한은 황장엽(黃長燁)노동당비서를 포기했는가.김정일(金正日)은“비겁한 자들은 갈테면 가라”고 말한 것으로 북한중앙방송이 18일 보도했다.이에 앞서 외교부대변인은 17일 회견에서“그가 망명을 추구했다면 그것은 변절을 의미하므로'변절

자는 갈테면 가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12일 망명신청 직후 나온'납치주장'에서 黃비서를'당중앙위 비서'로 호칭했으나 1주일만에 아무런 직함조차 없는'황장엽'으로 불렀다.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사실상 黃비서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으로 판단된다.

과연 그럴까.그러나 북한의 숨겨진 의도나 앞으로의 수습과정은 이런 단순한 표면적 움직임과는 달리 심도깊게 진행되고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먼저 가장 관심을 끈 대목은 북한이 黃비서를'변절자'로 규정하고 나선 것.납치라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黃비서를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배신자로 규정하면서'간첩'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중국의 북

한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黃비서가 자신의 망명동기나 서울행 의지를 분명히 밝힌 비교적 많은 자료를 제시해 북한의 납치주장이 먹혀들지 않게 된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黃비서 사건이 터지자 그의 주변조사를 통해 망명의 전모를 이미 파악했고 따라서 그와 일파를 배신자로 처리해 버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북한은 黃비서와 그 세력을 간

첩으로 몰아가기 위한 준비작업을 마친 것으로 안다”고 한 베이징(北京)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은 내부적 정치혼란이나 망명자가 생겼을 경우 간첩으로 몰아 위기를 넘겼던 전례가 있다.6.25 종전 사흘만인 53년 7월30일엔 부수상 박헌영(朴憲永)등을 미 제국주의의 고용간첩이었다는 죄명으로 기소해 처형했다.

또한 56년 발생한 이른바 8월종파사건 때는 김일성(金日成)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윤공흠(尹公欽.상업상).서휘(직업총동맹 위원장).이필규(내무성 부상)등이 중국으로 피신했고 북한은 이들에게 출당.철직 처분을 내렸다.

이들의 신병처리와 관련한 중국과의 협상에서 김일성은 정치적 활동을 않는 조건으로 중국망명을 허용했고 망명자들은 중국에서 여생을 마쳤다.물론 북한 권력체제 전반을 뒤흔드는 피의 숙청이 뒤따랐다.이러한 전례로 본다면 북한은 黃비서를

배신자로 몰아 그 추종자들까지 솎아냄으로써 김정일 체제 출범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가속화해 나갈 것이라는 얘기다.세대교체의 좋은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북한이'사회주의 배신행위'운운한 것은 배신자 색출이 시작됐음을 의미한

다는 분석이다.

17일 외교부대변인의 언급내용은 다른 한편으로 黃비서에 대한 고도의 압박전술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가족들은 물론 무엇보다 자신을 따랐던 개혁파.학문적 동료들과 제자들의 처지를 우려한 그에게 '이제부터 당신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시키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선 북한측도 참여한 黃비서의 자유의사를 묻는 절차가 있을 때 그가 마음을 돌려 적어도 중국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위협이라는 것이다.북한은 아직 일반 주민들에게 黃비서의 망명사실을 숨기고 있

다.그러나 중앙방송등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黃비서의 망명을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사전작업에 이미 들어갔다.김정일이 이미 오래전에 혁명가요를 인용해“비겁한 자여 갈테면 가라.오늘의 고난이 다 무엇이냐”고 언급한 내용이 되풀이 소개되고

있는 것이 그 전조다.갑작스런 黃비서의 망명소식과'간첩 황장엽'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자는 준비운동이다. [베이징=특별취재반]

<사진설명>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가운데 18일 오전

망명한 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의 건강검진을 위해 앰뷸런스를 탄

중국의료진이 영사부 건물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베이징=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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