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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외부인 접촉 말고 말조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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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중순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방문 일정을 조정할 때다. 주요 인사들을 대거 초청했고, 이들도 응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연구소를 방문한다고 언론에 보도되자 상당수 인사가 불참 의사를 밝히고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워싱턴 외교소식통 A씨)

“언론사와 함께 신년 기획으로 오바마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오바마 정부가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이들의 입을 통해 전망해 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오바마 선거 캠프에 관여했던 대다수 사람이 접촉을 피했다.” (워싱턴 소재 대학 교수 B씨)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오바마 정부에서 공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몸 사리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오바마 당선인 측이 선거 기간 중 오바마를 도왔던 인사들에게 대외활동 금지령을 내린 것이 근본 이유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3일(현지시간) “오바마 당선인이 대선 승리 이후 정권인수팀과 과거 선거 캠프 관계자들에게 ‘외국 정부 관계자나 언론인을 만나 오바마 정부의 정책인 것처럼 의견을 개진하는 행동을 삼가라’고 지시해 모두 조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경우 한국에 비해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현 정부의 권위를 존중하는 문화가 강하다. 이 때문에 오바마 측은 자칫 주변 인사들의 섣부른 발언으로 부시 행정부를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줄까 우려해 이 같은 엄명을 내린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바마 인사’들은 일제히 외부 접촉을 끊고 잠행 중이다. 공개적인 자리는 물론이고 사적인 자리까지 피하는 사람이 많다. 구설에 올라 차기 정부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을까 두려워서다.

대선 기간 때부터 오바마 캠프 사람들과 접촉해온 워싱턴의 한국 외교관들도 최근엔 이들과의 접촉 기회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오바마 캠프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던 인사조차도 어렵게 만나보면 접촉 금지령을 상당히 의식하더라”고 전했다.

선거 기간 동안 오바마 캠프의 한반도 정책 수립에 깊숙이 관여해온 한 싱크탱크의 C씨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오바마 캠프를 대변하는 형식의 어떤 인터뷰도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실제론 오바마 캠프의 의견이 포함되겠지만, 형식은 한반도 전문가로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해 달라”고 당부했다.

◆오바마 정권 공직 경쟁 치열=통상적으로 대선 후 당선인 측은 추수감사절 이전에 백악관 고위직 인사, 크리스마스 이전에 내각 인사를 마무리짓는 것이 관례였으나 오바마 당선인은 일정을 더욱 앞당기고 있다.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는 정무직 자리는 모두 7840개다. 이 중 상원 인준을 받아야 하는 고위직만 1177개 자리에 달한다. 그런데 오바마 측이 과거 당선인들에 비해 공직자 인선을 서두르면서 공직 희망자들의 물밑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친민주당 성향의 일부 싱크탱크들은 이미 고위직이나 정권인수팀에 발탁된 자기 연구소 소속 인사 등을 통해 공직 진출을 원하는 연구원 명단을 전달하고 있다고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전문 분야별로 희망 자리를 받아 일괄적으로 정권인수팀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8년 만의 민주당 정권 탄생이어서 그동안 공직을 학수고대하던 민주당 성향의 인사들 간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며 “일부에선 직급을 높게 받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친하게 지낸 오바마 측 인사로부터 ‘정권인수팀에서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 밤에 잘 때도 휴대전화를 머리맡에 두고 잔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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