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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범 교수, 대학가 유머 13탄 ‘빼빼별곡’ 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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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지난해는 무엇보다 경기침체로 나라 전체가 우울했던 시기.명예퇴직·감량경영으로 ‘고개 숙인’아버지들이 거리를 배회했다.이런 현실에서 대학가엔 ‘명퇴’시리즈가 유행했다.명예퇴직자들의 통칭은 명태족.엄동설한에 쫓겨난 동태족,어느날 황당히 해고된 황태족,울며 불며 매달리다 ‘생매장’된 생태족,끝까지 버티다 두들겨맞은 북어족,30대에 회사를 나온 조기족등 유형도 가지가지다.

해마다 한차례씩 대학가 속어를 모아 펴내는 서정범교수(경희대)의 13번째 유머집 ‘빼빼별곡’(한나라刊)에는 중장년 남성들의 비애와 자조가 이렇게 희화됐다.제목으로 쓰인 ‘빼빼 시리즈’도 어려운 경제를 반영하며 새로 등장한 유머로 ‘빼빼’는 물건등을 치우는 동사 ‘빼다’에서 유래한다.감원바람이 불자 ‘의자 빼’,전세값이 폭등하자 ‘방 빼’등이 회자됐다.증권에 망한 사람은 뺄때 못뺀 경우며 정치인들은 말빼기에,은행장들은 돈빼기에 분주했다.

정치는 유머의 단골소재.주로 정치인들의 위선과 부패상이 풍자됐다.정치인들의 좌우명은 우기면 진실,‘게기’면 진리,속이면 괴짜.결과적으로 후천성양심결핍증(AICS:C는 양심을 뜻하는 영어단어 Conscience)에 걸렸다.검사들이 고스톱을 잘하는 이유는 야당의원 수사때는 ‘고’,여당의원 수사때는 ‘스톱’을 남용하기 때문이란다.역대 대통령의 방귀에 대한 측근들의 반응도 흥미롭다.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경우엔 각각 “시원하시겠습니다”(이익홍),“보안조치하겠습니다”(차지철),“제가 뀌었습니다”(장세동)등이 나온 반면 YS의 측근들은 “현철에게 물어보자”고 쑥덕거렸단다.

컴퓨터 바이러스 시리즈는 재기가 넘친다.이승만바이러스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네다”는 소리를 내고,박정희바이러스는 모니터에 군화 장면을 연출하며,YS바이러스는 모든 문서를 경상도 사투리로 바꾼다.

지난해 풍미한 속어의 가장 큰 특징은 귀신이 등장하는 만득이 시리즈.화장실·창문·이어폰·지하철등 줄기차게 따라다닌다.심지어 귀신과 잠도 같이 자고 아이도 낳는다.그러나 결말은 항상 허무하다.대부분 언어유희 수준에서 그친다.서교수는 이를 “신·가정·자연을 상실한 신세대들의 허무주의적 현실관의 반영”으로 해석했다.

컴퓨터에 익숙한 학생들은 역시 사이버스페이스 연애를 ‘4S’로 예찬했다.현실속의 사랑보다 안전하고(Safe),돈이 덜 들고(Save),여럿을 동시에(Several),그리고 어디 누구와도 사귀기(Surpass)때문이다.

신세대들의 직업관을 보여주는 퇴근유형도 다양했다.죽어도 야근은 싫은 이승복형,야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형,그래도 야근은 싫다는 갈릴레오형,내 사전에 야근은 없다는 나폴레옹형,저를 믿고 보내주세요라는 노태우형등.

이밖에 빠떼루·공주병·거북이·바보·젖소부인·삐삐·썰렁·자동차·연예인시리즈등이 많은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서교수는 “PC통신 인구증가로 속어들의 전파속도가 매우 빨라졌다”면서 “전반적 불황 탓인지 캠퍼스에도 현실도피적 성향이 강해진 것같다”고 분석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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