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이 돈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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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불황기다. 모두 죽을 맛이겠지만 지역은 더 심하다. 지역의 주요 재원인 종합부동산세제가 붕괴됐고, 수도권 규제가 완화되면서 비수도권 지역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 때다. 낙후지역. 인구도 줄고 생활도 뒤떨어지는 지역이다. 주업이 주로 농업인 이들 지역은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자칫 존립 자체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 어떻게 살아날 것인가? 이코노미스트가 개조에 성공한 일본 낙후지역 5곳을 돌았다. 발로 뛴 일본의 낙후지역 성공기다. 생존에 고심하고 있는 우리 지자체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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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조원. 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예산 10개월 치에 달하는 돈이다. 이 돈이 1992년부터 2013년까지 11년 동안 농촌에 투입됐거나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해까지 이미 130조원이 쓰였다. 정부가 내건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루과이 라운드(UR)로 인한 손실을 보전한다, 외환위기에 따른 피해를 보상한다,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황폐해질 농업을 살린다 등등. 그러나 내용은 같다.

일본 낙후지역 개조 대탐구 #日 지자체 성공사례 5곳 현지 취재 … 리더십·민관협력·독창성이 요체

농민에게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농촌은 크게 변한 게 없다. 92년 대비 지난해 농가부채는 가구당 427% 늘었고 도시근로자 대비 소득도 89.1%에서 72.5%로 떨어졌다. 더 가난해진 상태에서 빚만 늘었다는 얘기다. 당연히 인구도 줄었다. 98년 440만 명이었던 농업인구는 지난해 327만 명으로 25%나 줄었다.

머지않아 농촌의 상당 수가 폐허로 변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들에게 붙여진 천형과도 같은 이름이 있다. 낙후지역. 소득이나 인구, 지역생산 면에서 뒤떨어져 있다는 의미다. 물론 여기에는 어촌도 포함되지만 대부분 농촌지역이다. 먹고살기도 힘든 이들에게 문화나 복지는 생각하기 어렵다.

정부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2005년 ‘신활력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낙후지역 개발지원 정책이 나온 것은 이 같은 사정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는 취지에서 발전 전략과 성과에 따라 지원금에 차등을 뒀다. 지난 4년 동안 이 정책의 성과는 적지 않았다.

지자체는 축제와 특산물 개발 등에 요긴하게 이 돈을 썼다. 신활력사업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모성은 지방행정연수원 교수는 “이 사업을 통해 비로소 지자체가 소프트웨어 사업에 눈을 돌리게 됐다”며 “주민 의식을 깨우는 등 낙후지역 살리기에 큰 몫을 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어떻게 지자체를 더 적극적으로 지역발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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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낙후지역 개조사례가 중시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우리보다 자치제 역사가 훨씬 길고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일본은 우리보다 더 많은 성공사례를 만들어냈다. 어떻게 해야 ‘낙후’의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일본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코노미스트 지역연구센터는 일본의 세계적인 계측기 업체 AND(Analogue and Digital)의 한국 법인인 한국AND(www.andk.co.kr)의 도움을 받아, 일본 낙후지역 개발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5곳을 선정해 10월 한 달 동안 4명의 기자가 현장을 취재했다.<표·지도 참조>

이들 지역의 성공 노하우는 지금 당장 국내 지자체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후쿠시마현의 이와키시. 석탄 시대가 끝나며 망가질 수밖에 없는 지역을 ‘심산(深山)의 하와이’로 만들어 대박을 쳤다. 돗토리현의 사카이미나토시.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요괴마을’을 만들어 한 해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오이타현의 분고타카다시는 1950년대 지어진 오래된 건물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일본 전 지역에서 향수를 달래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가가와현의 나오시마 섬은 일본 유수의 출판·교육기업인 베네세 그룹의 헌신적인 투자와 관리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재탄생했다.

섬 전체가 예술작품으로 꾸며진 것이다. 호텔은 3개월치 예약이 끝난 상태. 섬을 꾸미는 과정에서 베네세 그룹이 섬 주민들의 마음을 배려한 것이 성공의 키 포인트다. 오이타현의 유후인 온천을 보자. 이미지를 여성과 가족에 맞추며 남성 중심인 온천의 거목 벳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장소 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전문가·학자의 연구 주제로도 자주 등장한다.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일본의 자치제 역사는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멀게는 16세기 도쿠가와 시대까지, 가깝게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0여 년의 역사에 불과한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큰 차이는 ‘경험’이다. 이미 축적된 ‘실패의 경험’이 ‘성공의 경험’으로 승화했다.

일본 지역발전 전문가인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의 실패를 혈세 낭비로 비판하기보다는 성공을 위한 ‘자산’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역사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상상력. 취재한 5곳 모두가 ‘상상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지역에 쏟아 부었다.

숱한 비판에 직면하면서도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비판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고 이 리더십은 자기희생에서 탄생한다. “모든 지역 발전의 성공 이면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적인 ‘키 퍼슨(key person)’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나는 함평나비축제가 꼭 여기에 해당된다. 이석형 함평군수는 “나비축제는 상상력의 결과”라고 말한다. “멱살까지 잡힐 뻔했다”는 초창기 주변 비판을 이겨냈고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나비축제를 일궜다. 이제 함평나비축제는 세계엑스포를 거치며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축제로, 다른 한편으로는 나비·곤충 클러스터로 허물을 벗고 있다.

이재광 지역연구센터 소장·i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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