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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이 ‘훌라댄스’에 푹 빠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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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일본 동북지방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한 후쿠시마(福島)현 이와키시는 오랜 세월 탄광이 삶의 터전이었던 산골 마을이다. 1856년 하쿠스이무라(白水村)에서 석탄층이 발견된 이래 이곳 사람들은 석탄을 캐며 생을 꾸려갔다. 척박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가족애가 있었고 동료애가 있었다.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폐광지역을 하와이언 테마파크로 … 40년간 1조6천억 엔 경제효과 #일본 낙후지역 개조 대탐구

그 정신은 ‘이치잔잇카(一山一家)’라는 말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탄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산은 곧 하나의 집이었다. 하지만 이런 산골에 어느 날 갑자기 큰 위기가 닥쳐왔다.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인 석유 에너지 혁명. 하지만 이와키시는 지금 그 쓰나미를 극복하고 유명한 온천 테마파크 마을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지역 활성화 성공사례다. 새로 찾아낸 사업 덕분에 인구 감소도 멈췄고 외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 수도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생활 형편도 나아졌다. 과연 이곳은 어떻게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을까?

리더의 결단력…조반탄광 문닫고 대변신

탄광촌 살리기 5가지 성공 비결

1.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一山一家’ 정신
2. 리더의 선견지명과 강한 결단력
3. 스토리텔링의 힘-영화 ‘훌라걸스’ 히트
4. 관민(官民)이 함께 노력
5. 위기의식으로 무장한 공무원들의 소리 없는 봉사

“사장님, 조반탄광의 합리화 계획서입니다.”

“….”

“그럼 책상 위에 두고 갈 테니 읽어보십시오.”

“….”

한때 일본 혼슈(本州·국토를 이루고 있는 4개의 큰 섬 가운데 가장 큰 섬) 최대의 탄광으로 ‘검은 다이아몬드’를 긁어 모았던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조반(常磐)탄광. 석유 에너지 혁명이 전 세계에 퍼지면서 이곳도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효율성이 뛰어난 석유가 석탄의 자리를 밀치고 들어옴에 따라 석탄 수요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다.

일본 전국에서 문닫는 탄광이 속출했다. 당시 나카무라 유타카(中村豊) 사장은 두꺼운 탄광 합리화 계획서를 들고 들어온 기획담당 임원을 앞에 두고도 말없이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머쓱해진 임원이 계획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나카무라 사장이 갑자기 계획서를 집무실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소리를 질렀다.

“이 따위 계획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조반탄광의 미래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카무라 사장이 마침내 폐광의 결단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가면 조반탄광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임원들은 기존 사업의 합리화 방안을 찾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리더는 역시 달랐어요. 당시의 나카무라 사장은 완전한 변신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죠.”

테마파크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 등을 운영하는 조반흥산(常磐興産)의 사카모토 마사오(坂本征夫) 이사는 탄광의 변신 과정을 설명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는 리더의 강력한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폐광 위기에 처한 조반탄광이 종업원들을 구하는 길은 새로운 사업을 일으켜 사원을 흡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카무라 사장은 탄광을 대신할 새로운 사업을 찾기 위해 해외 시찰에 나섰다. 수차례 미국과 유럽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발품을 팔았지만 묘책이 나오지 않았다. 미국 시찰을 마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귀국길에 오르려는 순간, 동행한 부하 직원이 “사장님, 피곤하실 텐데 도중에 하와이에 들러 잠시 쉬다 가시죠”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사장의 건강을 염려해서였다.

“뭐야, 하와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조트 아일랜드입니다.”

“….”

나카무라 사장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하와이에서 쉬다 가기로 했다. 처음 방문한 지상낙원 호놀룰루는 무척 더웠다. 게다가 그곳에서 처음 본 폴리네시안 쇼에서 원주민이 연주하는 타악기 소리는 왠지 낯설지가 않고 정감이 갔다. 그 순간 나카무라 사장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아이디어가 번쩍였다.

“잠깐만, 하와이 덥다. 온천도 덥다. 타악기, 그래 우리 탄광 진자(神社)의 다이코(太鼓·북) 소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하와이 같은 환경과 타악기 소리를 싫어하는 일본인은 아무도 없을 거야. 그래 이와키의 온천을 살려 하와이를 만들자….”

조반탄광은 일본에서 노동조건이 최악인 곳이었다. 석탄 1t을 캐려면 40t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온천을 밖으로 빼내야 했다. 사카모토 이사의 설명.

“당시만 해도 조반탄광은 탄광이 아니라 온천 채굴회사라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온천을 퍼내야 했던 조반탄광으로서는 온천이 성가신 마이너스 자산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나카무라 사장이 발상을 전환한 순간 그 마이너스 자산이 엄청난 플러스 자산으로 바뀌게 된 겁니다.”

일본으로 돌아온 나카무라 사장은 지체 없이 하와이언 리조트 개발에 착수했다. 3년의 고생 끝에 1966년 1월 15일, 마침내 일본 최초의 테마파크 ‘조반 하와이언 센터’가 문을 열었다. 폐광이 테마파크 온천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600명에 달하는 종업원 전원을 흡수했다. 암울했던 산골에는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영자도, 종업원도 모두 아마추어나 다름없던 테마파트 사업이 도쿄증시 1부 상장기업으로 성장하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마을을 살린 탄광촌 처녀 ‘훌라걸’

후쿠시마현은…

■ 도쿄에서 200㎞가량 떨어진 일본 동북지방의 남단지역
■ 인구 206만8000명(2007년), 이 중 이와키시 인구는 35만 명
■ 면적 1만3782㎢로 홋카이도, 이와테현에 이어 일본 3위

1965년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한 탄광마을. ‘급구! 하와이언 댄서’라고 적힌 구인 안내서를 보면서 이 마을을 벗어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사나에(早苗)는 기미코(紀美子)를 설득했다. 오래전부터 남자들은 광부로, 여자들은 선탄공으로 일했다. 하지만 지금은 석유로 인한 에너지 혁명 때문에 폐광이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탄광회사가 구상한 것이 레저시설 ‘조반 하와이언 댄서’ 였다. 기미코의 엄마 지요(千代)도, 오빠 요지로(洋二朗)도 탄광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는 갱이 무너져 오래전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100년도 더 된 우리 탄광은 천황 폐하까지 시찰하셨던 산이었다”고 자랑하면서 탄광을 폐쇄하고 ‘하와이’를 만드는 데 대해 맹렬히 반대했다.

그래도 기미코와 사나에는 훌라댄스 설명회에 참석했다. 다른 마을 처녀들은 처음 보는 훌라댄스 영상에 놀라면서 “저런 춤은 출 수 없어. 배꼽이 다 보이잖아”라고 소리치며 도망가버렸다. 남은 사람은 기미코와 사나에, 회사에서 서무 일을 하고 있는 아이 딸린 하쓰코(初子)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온 덩치 큰 여자아이 고유리(小百合) 뿐이었다.

그 와중에 여자들에게 훌라댄스를 설득하기 위해 하와이언센터의 요시모토(吉本) 부장은 도쿄에서 히라야마 마도카 선생을 초대했다. 본고장 하와이에서 훌라댄스를 배우고 SKD(쇼치쿠가극단)에서 춤을 췄던 댄서 출신이다. 처음에는 춤이라곤 전혀 모르는 탄광촌 처녀들을 하찮게 여겨 가르칠 의욕조차 생기지 않았던 마도카 선생도 기미코와 사나에의 열정에 끌려 차츰 본격적으로 매달리게 됐다….(스토리 중략)

1965년 일본 본토 최대 규모의 조반탄광에서는 대규모 인원 감축이 행해졌다. 한때 기간산업으로 융성했던 때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이러한 마을을 구하기 위해 이 북쪽 마을에 ‘낙원 하와이’를 만들자는 기사회생의 큰 프로젝트가 나왔다. 그중 가장 볼거리는 훌라댄스 쇼. 춤이라곤 본오도리(盆踊り·일본의 전통 민속춤)밖에 모르는 탄광촌 처녀들에게 훌라댄스를 가르치기 위해 도쿄에서 댄스 교사를 불러들인다.

화려한 댄서 출신으로 콧대 높은 이 여성은 처음에는 탄광촌 처녀들을 촌뜨기라고 무시한다. 하지만 이들의 순수한 열정에 이끌려 잊어버렸던 정열을 다시 한번 불태우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힘든 현실을 안고 있으면서도 탄광촌 처녀들은 우정을 바탕으로 강하고 아름다운 훌라댄스의 진수를 몸에 익히게 된다.

조반 하와이언 댄서가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게 된 기적의 실화가 감동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2006년 9월 23일 일본 전국에서 동시 개봉된 영화 ‘훌라걸스’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히트를 쳤다. 관객동원 130만 명, 흥행수입 15억 엔. 국산영화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일본 영화시장에서 적은 예산으로 만든 ‘훌라걸’은 이듬해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작품상과 최우수감독상을 받는 등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제작자(이봉우)와 감독(이상일)이 모두 재일 한국인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이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이와키시는 당연히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게 되었고, 영화를 보고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를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다. ‘훌라걸스’의 영향으로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도 지난해 개장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입장객 161만1000명으로 사상 최고 기록이다.

이 온천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조반흥산의 지난해 매출은 492억400만 엔으로 전년 대비 4.0% 성장했으며, 경상이익은 13억2600만 엔이었다. 이 중 관광부문 매출은 135억2400만 엔으로 전년 대비 5.9% 성장했으며, 영업이익은 21억900만 엔(전년 대비 11.0% 증가)이었다. 이와키 상공회의소 직원 가나자와 슈이치에게 영화사로부터 “조반탄광의 역사를 찍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온 것은 2004년이었다.

이후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2005년 10월에 다시 제작협력 요청이 들어왔다. 이와키시에서는 지역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이와키필름협의회’를 만들어 제작에 도움을 줬다. 1960년대와 비슷한 탄광 풍경이나 낡은 건물이 있는 로케이션 지역 찾기, 엑스트라 모집 등의 지원을 반년 간에 걸쳐 계속했다.

조반흥산은…

설립: 1944년 3월 31일(1949년 도쿄증시 1부 상장)
대표: 사이토 가즈히코 사장
매출: 492억 엔(2007년)
주요 사업: 관광·오락·스포츠 시설 운영,
호텔·골프장 운영, 석탄 및 가공품 판매,
철강·목재 등 토목자재 판매

영화가 히트한 후 ‘훌라걸을 응원하는 모임’도 결성됐다. 이와키시와 관광물산협회, 이와키상공회의소 등 33개 단체가 힘을 모아 훌라걸을 활용한 지역 활성화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단법인 ‘이와키관광마을만들기 뷰어로’의 니이즈마 야스히로(新妻康宏) 과장은 “영화에 그려진 40년 전의 지역재생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지역 주민들이 협력해 관광 활성화를 꾀하고 싶다”고 말한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이와키시로 유입된 관광교류 인구를 보면 936만(2003년), 1060만(2004년), 1040만(2005년), 1060만(2006년), 1070만(2007년) 명으로 안정된 추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영화 훌라걸스 덕분에 관광객이 10만 명이나 늘어났어요.”

훌라걸스 자랑에 여념이 없는 니이즈마 과장은 “훌라걸스의 ‘약효’가 떨어지기 전에 새로운 모티브를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라고 말했다.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테마파크를 상상하면 거대한 자본, 외국의 기술과 노하우 같은 것들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는 그런 것과는 관계가 없다. 사카모토 이사의 설명.

“나중에 사람들이 테마파크 어쩌고 해서 테마파크인 줄 알았지 우린 처음에 그런 말조차 몰랐어요. 설계에서부터 콘텐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 손으로 다 했습니다. 광산에서는 수도, 전기, 선로 등 모든 것을 ‘데즈쿠리(手作り·수작업)’로 자체 조달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요. 그래서 조반 하와이언즈(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의 전신)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우리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1966년 1월 16일. 조반 하와이언즈가 마침내 문을 열었다.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고 매스컴도 취재 경쟁에 열을 올렸다. 각자 맡은 자리에 배치된 종업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오랫동안 훈련을 거듭했지만 전원 아마추어 집단이었기 때문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첫해 예상 입장객 수는 80만 명. 막상 뚜껑을 열자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124만 명이 한때의 탄광촌으로 몰려들었다.

종업원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지만 문제도 속출했다. 각 부문의 반상회가 매일 밤 자정을 넘겨도 결론이 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어지는 야근 때문에 종업원들의 피로가 누적됐다. 이럴 때 힘을 발휘한 것이 ‘一山一家’의 정신이었다.

“훌라댄스 쇼가 벌어지는 밤 8시부터 9시 사이 한 시간 동안 숙박객 1000명의 이불을 갈아주어야 했습니다. 담당직원 50명을 풀가동해도 모자랄 판에 그날따라 지쳐 쓰러진 직원이 많아 20명밖에 출근하지 못했어요. 마을 사람들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순식간에 수십 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거뜬하게 일을 해치웠습니다.”

사카모토 이사는 탄광 시절부터 이어져온 ‘一山一家’의 정신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말한다.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나카무라 사장은 하와이언즈를 만들 때부터 모든 인력과 물자는 지역에서 우선 조달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래도 모자란 게 있으면 외부의 도움을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도 유명 브랜드에서 자사 제품을 써달라는 요청이 있지만 우리는 지역 상품을 우선적으로 쓰고 있어요. 다소 비용이 올라가도 곧 쓰러질 것 같은 지역의 허름한 과자점, 세탁소에 일을 맡깁니다. 지역 사람들에게 사랑 받지 않고는 존재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 인근에는 유모토(湯本)라는 전통적인 온천마을이 있다. 일본 3대 온천의 하나로 1200년 전에 개발됐다는 이곳에는 현재 30여 곳의 온천여관이 있다. 거대한 테마파크가 생기면 손님을 독차지할 것이란 우려 때문에 조직적으로 반발할 법도 한데 이곳에서는 별 잡음 없이 공생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다.

처음에는 반발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카무라 사장이 사업을 추진하기 전 온천여관의 모든 경영자를 불러놓고 “우리끼리 다툴 때가 아니다. 우선 이와키가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넘쳐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모두가 사는 길이니 저도 돕겠다”고 진지하게 설득한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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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에서 변신한 온천 테마파크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

1980년대 초 일본에 유학왔다 이와키시에 정착한 조한배씨는 이곳 온천여관 ‘호텔 팜 스프링’의 유일한 한국인 경영자다. 그 역시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근처에 거대한 테마파크가 있어 우리도 먹고삽니다.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에서 흘러 넘치는 고객들이 우리 쪽을 찾으니까요. 하와이언즈 측에서도 그렇게 유도하고 있어요.”

‘이와키 관광마을 만들기 뷰어로’는 말 그대로 공생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이와키시와 관광물산협회, 상공회의소,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에서 각각 직원이 파견돼 상시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이와키시의 관광진흥을 위한 각종 이벤트도 4개 단체가 공동으로 진행한다.

이곳에서는 유모토 온천이나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 모두 ‘一山一家’인 것이다. 이와키의 ‘一山一家’ 정신이 만들어낸 경제적 파급효과는 매우 컸다. 최근 미즈호종합연구소가 1966년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 창업 이래 창출한 파급효과는 연평균 415억 엔, 40년간 총 1조6612억 엔에 달한다는 조사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연평균 파급효과는 이와키시 전체의 공업부가가치액 4438억 엔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고용창출 효과도 매우 컸다. 40년간 총 38만6195명, 연평균 9654명이 수퍼리조트하와이언즈 덕분에 일자리를 얻었다. 이는 이와키시의 연평균 노동력 인구 18만 명의 5%에 달한다.

인터뷰 하시모토 기미카즈 후쿠시마현 상공노동부 관광교류과 주사

“주민과 사업자 편하게 만드는 게 공무원 할 일”

-1971년 후쿠시마 출생
-도호쿠(東北)대 문학부 졸업
-NTT데이터 근무 후 공무원 생활
-일본무역진흥기구, 현청 상공노동부 등 근무
-현재 관광교류과 주사

10월 9일 오후 1시. 후쿠시마 국제공항 1층에서 현청 상공노동부 관광교류과 하시모토 기미카즈(橋本公和) 주사를 만났다. 초면이지만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이와키시의 지방 활성화 사례를 취재하고 싶다고 요청한 뒤 보름 동안 주고받은 e-메일만 10통이 넘기 때문이다.

그는 관용차인 도요타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에 기자를 태우고 1박2일 동안 마치 자기 일처럼 이와키시 곳곳을 안내했다. 도쿄에서 중앙일보 특파원으로 3년간 근무한 적이 있지만 하시모토 주사만큼 성의껏 협조해준 공무원은 드물었다.

- 후쿠시마현의 고민은 무엇입니까.
“도쿄 등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방은 인구 감소와 그에 따른 경쟁력 약화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현은 다양한 산업으로 파급 효과가 큰 관광산업을 교류 인구 확대 차원에서 중시하고 있지요. 국내는 물론 한국이나 중국 등 해외 관광객 유치도 적극 추진하고 있답니다.”

- 인구가 얼마나 줄었습니까.
“1998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인구가 조금씩 줄고 있습니다. 98년에 213만6000명이었던 현의 인구는 2007년 206만8000명으로 줄었어요. 인구 감소는 경제력 감소와 경쟁력 감소로 이어집니다. 국민 전체 출산율 자체가 떨어지고 있어 인구 감소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로 인한 부족분을 외부의 교류 인구로 메워야 하는 게 숙제죠.”

- 현에서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나요.
“네 가지 기둥이 되는 시책과 열 가지 구체전략을 세웠습니다. 간판은 ‘21세기를 선도하는 창조적이고 활력 있는 산업을 전개하는 후쿠시마’입니다. 이러한 큰 그림 아래 각 시와 민간단체, 기업들이 힘을 합해 지역 활성화를 꾀하고 있어요. 산업 활성화 전략이 그 첫 번째 기둥이고, 두 번째는 관광 활성화 전략입니다.”

- 이와키시의 지역 활성화 과정에 공무원도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까.
“지역 활성화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민간입니다. 공무원은 주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 영화 ‘훌라걸스’는 재미있습니까.
“우리 지역 스토리를 다룬 영화라서 당연히 애정이 가지요. 너무 감동적이어서 세 번이나 봤습니다. 영화가 지역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됐어요.”

취재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하시모토 주사가 가방에서 ‘훌라걸스’ DVD를 꺼내 빌려줬다. 기사를 쓰기 전에 꼭 감상해보라는 것이다. 일본 공무원의 열정과 진지함이 지역 활성화에도 보이지 않는 기여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후쿠시마현 이와키시=김국진 기자·obitku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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