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영 피격 북한 백배천배 보복 신호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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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5일 발생한 이한영(李韓永.36)씨 총기 피격사건은 북한 황장엽(黃長燁)노동당 비서의 망명신청이 있은지 사흘만에 이루어졌다는 점등에서 북한의 소행 가능성이 유력시 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개입한 게 확실하다면 그동안'백배천배 보복'을 공언해온 북한의 본격적인 보복테러의 신호탄이라는 점에 사건의 심각성이 있다.

북한 소행 개연성은 무엇보다 黃비서의 망명신청이 있은 직후 나온 외교부 대변인 성명에서 나타난다.“납치행위에 대한 응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위협한 것이다.

김정일(金正日)의 55회 생일(2.16)을 며칠 앞두고 터진 망명사건의 충격을 감안할 북한의 대응은 더욱 신경질적일 수 있다.

북한은 지난 8일에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김정일 생일기념 전시회장의 재미교포간 충돌사건을 거론,“남조선의 정치테러며 백배천배의 보복과 징벌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

李씨는 82년 귀순 이후 김정일을 비롯한 권력 핵심부의 사생활을 폭로해 북한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혔다.김정일도“이한영이를 어떻게든 손봐야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李씨는 북한정권의 제거 리스트 우선순위에 오른 인물중 하나라는 것이다.78년 납북됐다 8년만에 탈출한 최은희.신상옥씨에 대해서도 김정일이 보복테러를 지시했다는 귀순자들의 증언도 있다.

지난해 검거된 위장간첩 깐수(본명 정수일)의 대북 보고내용에 최.신씨의 친인척 주소가 포함돼 있었다는 점은 북한이 귀순망명자의 제거를 위해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지난해 9월 발생한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때 북한은“참을성에도 한계가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복의지는 커질 것”이라고 적반하장격 협박을 했다.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최덕근(崔德根)영사 피살당시에는 남측의 자작극이라면서“우리를 모해하는데 대해 단호한 보복과 징벌을 안기고 피의 대가를 백배천배 받아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들어 북한의 보복위협은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는 양상이다.단순한 위협이 아니라“피의 대가를 백배천배로 받아내겠다”“몇천배의 보복으로 짓뭉개버릴 것”이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이번 사건은 북한이 黃비서의 망명사건을 계기로 히스테리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난으로 체제불안이 계속되는데다 핵심권력층의 동요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시점에서 테러를 통한 극도의 긴장조성으로 이를 넘겨보려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물론 한편에선 '북한테러'로 속단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조심스런 지적도 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발언이 곧 행동으로 옮겨지기엔 여러 제약요인이있고 북한의 소행으로 지목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쉽게 실행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제반 정황으로 미루어 김정일의 직접 지시 내지 김정일 측근들의 과잉충성이 만든'작품'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게 사실이며 그런 측면에서 유비무환의 충분한 대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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