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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충성에 집착하는 대통령은 실패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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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충성을 고위직 선발의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알베르토 곤살레스 전 법무장관과 마이클 브라운 전 연방재난구호청장이 그렇게 선발됐다. 그러나 곤살레스는 고문을 합법화해 ‘민주주의 보루’라는 미국의 위상을 추락시켰고, 브라운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할 때 허둥지둥해 부시 정부의 무능력을 드러냈다. 부시의 말에 고분고분한 측근 위주의 내각은 대량살상무기가 없는데도 증거까지 조작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고 미국을 헤어나기 힘든 수렁에 빠뜨렸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일 인터넷판에서 “부시와 같이 충성을 위주로 고위직을 선발한 대통령은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충성스러운 측근은 복잡한 정부 부처를 운영할 전문성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측근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대통령이 고언을 들을 수 없어 국정을 잘못 운영할 수 있고, 내부 비리도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패한 대통령은 측근 정치=뉴스위크는 “부시 대통령의 충성 집착은 아버지 조지 HW 부시의 대통령 재직 시절 체험에서 나왔다”고 분석했다. 부시는 아버지의 집권 당시 국무장관인 제임스 베이커와 백악관 예산실장인 리처드 다만이 아버지보다는 스스로의 정치적 이해를 우선하는 것을 보고, 충성을 중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이커는 헨리 키신저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뛰어난 국무장관으로 꼽힐 정도로 일을 잘했다.

린든 존슨 전 대통령도 충성을 중시했다. 그는 전임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와 연결된 인물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케네디 정부 시절 임명했던 일부 인사가 위험을 경고했으나 존슨은 베트남 전쟁을 강행했다. 미국의 군사력으로 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낼 수 있다고 자만한 것이다. 측근들이 포진한 내각에서도 반대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아예 믿을 만한 사람들로 이너 서클을 만들고, 이들 위주로 국정을 운영했다. 지나친 충성 경쟁을 벌이던 이들은 닉슨의 대통령 재선을 위해 불법 도청까지 하다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닉슨을 불명예 퇴진시켰다.

◆성공한 대통령은 정적도 껴안아=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은 정적들을 주요 장관에 임명했다. 그는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경쟁했던 라이벌 윌리엄 수어드와 샐먼 체이스를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에 기용했다. 이들은 초기엔 링컨과 마찰을 빚었으나 나중에 링컨의 충실한 지지자가 돼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이런 링컨의 정적 기용은 도리스 굿윈의 『팀 오브 라이벌스』에 기록돼 있다. 이 책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애독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도 내각에서 각료들의 논쟁을 지켜보는 걸 즐겼다. 특히 해럴드 아이크스 내무장관과 헨리 월러스 농무장관은 경제정책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했다. 루스벨트는 논쟁을 충분히 듣고 종합해 국정 방향을 정했다. 그 결과 뉴딜정책으로 불리는 각종 경제 회생책을 내놔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내부 반발을 수용했다. 당시 백악관 예산실장인 데이비드 스토크먼은 “레이건의 공급 경제학은 난센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으나 쫓겨나지 않았다. 나중에 “대통령에게 크게 혼난 걸로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뿐이다. 레이건 집권 당시 강경 노선의 조지 슐츠 국무장관과 온건 노선의 캐스퍼 와인버거 국방장관 간에 대립이 있었으나 레이건은 경제를 회생시키고 소련과의 체제 경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뉴스위크는 “오바마는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지 않고 국정 목표에 공감할 만한 인물을 각료로 내정하고 있다”며 “성공적인 대통령은 충성을 요구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헌신하도록 만든다”고 분석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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