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이 도시를 점령한 건 “광고 … 화장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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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주명덕씨는 여의도를 가다 도시의 주인처럼 군림하고 있는 건물 위 광고판 속 여성을 찍었다. [대림미술관 제공]


◆광고가 점령한 도시=한국의 1세대 다큐 사진가 주명덕씨는 1966년 버려진 혼혈아들을 찍고는 이렇게 적었다. “6·25라는 민족의 참변 이후…15년. 전쟁이 끝났다는 것은 한국인의 착각입니다. ‘한국적인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홀트씨 고아원, 섞여진 이름들’전은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데뷔전이다. 바로 그 매서운 눈으로 한국의 가족 생활상, 문화인·종교인들의 초상사진, 우리 전통공간, 검은 풍경사진 등을 잇따라 찍었다. 그렇게 40여 년, 이제 그는 도시를 찍는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 걸린 사진들은 여의도 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해외 명품 광고판 속 서양 여성 모델, 비오는 오후 버스 차창에 맺힌 빗방울, 버스 타고 지나가며 찍은 흔들린 야경 등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주명덕 사진이 젊어졌다”“감각적이다”라고도 한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사진가가 사회를 볼 때는 비판적 시선이 항상 깔려있다”는 주씨는 “외국 도시와 차별화되는 서울만의 특성을 찾기 어려웠다. 사진 찍을 때 나는 명품 광고하는 여자들한테 점령당한 것 같은 섬뜩한 기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미술관은 올해부터 2010년까지 3년에 걸쳐 주씨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도시 사진 75점을 건 ‘도시정경’전에 이어 ‘대지’‘전통공간’ 등 일종의 역순 회고전이다. 이번 첫 전시에 맞춰 그간의 사진을 모은 작품집도 발간했다. 내년 1월 18일까지. 02-720-0667.

오형근씨가 거리에서 만난 이슬기(19)양. [국제갤러리 제공]

◆대중스타의 화장법 따라하는 소녀들=오형근씨는 99년 ‘아줌마’전으로 이름을 알렸다. 짙은 화장을 하고 호피 무늬 옷을 입은 살찐 중년 여성을 세워두고 플래시를 펑 터뜨렸는데, 문득 슬프고 고립된 이미지가 비쳤다. 오씨는 “한국 사회는 지극히 아저씨의 나라다. 자기 위장에 서툰 아줌마들의 이미지를 통해 한국 사회의 지배 권력에 대한 얘기를 꺼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4년엔 연기자를 꿈꾸는 여고생들을 찍어 ‘소녀연기’전을 열었다. 대중매체에서 규정하는 소녀 이미지에 스스로를 맞춰 가는, 아이도 여성도 아닌 이들이다. 이렇게 특정 유형의 피사체만을 잇따라 찍어 평단에선 그를 유형학적 사진가라고도 부른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서 여는 ‘소녀들의 화장법전’은 그 유형학적 사진의 마지막 시리즈라 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그는 서울 시내와 신도시 곳곳 10대들이 모이는 곳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벌였다. 기준은 서툰 화장을 한 소녀들. “나는 갈등이 있는 사람,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에 관심이 있다. 아줌마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인 소녀들이 대중매체에서 배운 동작, 화장법으로 어떻게 자신을 방어하려 드는지에 주목했다.”

오씨는 이제 작업의 범위를 확대해 정체성이 급변하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 유독 신경 쓰는 한국 사회의 불안감에 카메라를 겨냥할 참이다. 12월 31일까지. 02-735-8449.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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