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소설, 마지막 진수를 만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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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004년 5월 20일. 신화 소설 1부 초고 완료.’ ‘2004년 5월 24일. 신화 소설 2부 시작.’

지난 7월 작고한 이청준(사진·1939~2008) 선생의 일기엔 이렇듯 ‘신화 소설’이란 단어가 빈번히 등장한다. 문학평론가 이윤옥씨는 “이청준 선생님께선 돌아가시기 전 필생의 역작을 내고자 하셨다”고 3일 말했다. 그 신화 소설 1부에 해당하는 장편소설 『신화의 시대』(물레) 출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이윤옥씨는 선생의 뜻에 따라 고인의 평전을 집필하고 있다.

“2002년부터 10년을 예상하고 집필을 시작하셨어요. 신화 소설을 마무리하면 살아서 쓸 소설은 모두 완성하는 거라 하셨죠.”

신화 소설은 3부작으로 계획돼 있었다. 그러나 폐암이란 병마 앞에서 펜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집필은 2부의 얼개 정도만 드러낸 상태에서 중단됐다.

『신화의 시대』는 이청준의 고향 장흥을 배경으로 한다. 미친 여자 ‘자두리’가 마을에 흘러들어 누구의 씨인지 모를 아이를 낳고, 그 아이 태산이 비범한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자두리와 태산의 모델은 선생님 고향 마을에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태산은 요절하지 않았다면 큰 일을 했을 천재라며 마을 사람들 사이에선 신화 같은 존재로 남아 있지요.”

이씨는 미발표 원고와 작가노트 등을 근거로 2부와 3부의 그림도 그려냈다.

“폐결핵으로 요절한 선생님의 큰 형을 모델로 한 인물도 있습니다. 태산과 함께 2부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예정이었죠. 작품엔 선생님의 가계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집필을 계속 하셨다면 마지막 3부의 주인공은 바로 이청준 선생님이 되었을 겁니다.”

결국 ‘신화 소설’은 작가의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자전적 소설인 셈이다.

“이청준의 ‘신화’란 신들의 세상이 아닙니다. 동물까지 감싸 안는 토속적 신앙의 신화입니다. 피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넋의 차원’이지요. 『당신들의 천국』 등 ‘역사적 차원’으로 다룬 이전 작품에서 드러나는 회의적인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셨죠.”

이번에 출간된 『신화의 시대』는 1부에 해당하지만 그 자체로도 완결된다. 소설가 현길언씨가 발행하는 계간지 ‘본질과 현상’에 2006~2007년 발표된 바 있다.

“선생님의 소설 중 가장 재미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책의 형태로 나올 수 있는 건 이게 마지막이네요.”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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