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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화 흔들리는 그들의 초상-일찍 터뜨린 샴페인 문화에 약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연세대 사회학과 조혜정 교수는 최근 펴낸 책‘학교를 거부하는 아이,아이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청소년문화가 변해가는 단적인 징후를 “모범생문화가 더이상 힘을 갖지 못하고 날라리문화가 보편화 돼가는 것”으로 진단한 바 있다.한마디로 기성세대가 자기때와 다른 10대문화를 어설프게 일부 일탈학생의 것으로만 치부하려 든다면 큰 오산이란 얘기다.

고1 여학생 은실이는 “반에서 공부만 하는 애들은 극히 소수”라고 단언한다.놀러갈 때 화장하고,뒤풀이 때 노래방을 찾는 것은 고교생 자신들의 눈에는 결코 일부 불량학생이 아니다.소위 ‘물나쁜’ 기성세대의 출입이 원천봉쇄된 록카페는 사실상 10대들의 해방구를 형성한다.한발 더 나서면 나이트클럽도 그리 멀지 않다.

요즘 아이들은 가출도 그리 겁내지 않는다.상위권 성적에 중산층 가정형편의 고1 여학생 현주는 중학교때 3일간 가출한 적이 있다.‘하고픈 일은 뭐든 반대하는’ 엄마에 대한 반항심에서 혼자 사는 친구네서 지내다 온 것이다.교사들 말로는 중산층 과보호 엄마들일수록 가출했다 돌아온 아이들에게 오히려 쩔쩔맨다.크게 야단쳤다가 더 반항할까 싶어서다.현주의 한마디-“도시락 반찬부터 달라지잖아요.”

고1 남학생 광욱이도 중3 여름방학때 15일간 가출한 적이 있다.그 때는 아무 것도 몰라 한강 둔치에서 자다 돈이 떨어져 들어왔지만 요즘은 주유소·단란주점같은 데를 찾아가면 돈도 벌고 숙소도 해결된다는게 아이들의 상식이다.집나가면 고생이란걸 안다.그렇다고 ‘집나가면 끝장’이란 위협도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학생들이나 교사나 1주일이 고비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제법 건전한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유흥업종으로 흘러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1주일이고,돌아와서 학교에 곧바로 적응할 수 있는 가출기간도 1주일이란 얘기다. 어떤 이유건 가출이 상습화되면 사정은 다르다.

아예 자퇴하게 되는 아이들과 그럭저럭 다시 학교에 적응하는 아이들,‘노는’중학생과 ‘보통’고등학생의 경계는 아르바이트 직종에도 존재한다.옷에 기름묻히고 몸이 고된 주유소 총잡이나 ‘등뒤에 폭탄을 지고 다니는’ 오토바이 가스배달은 3D업종이다.그래서 주유소는 중학생들이,가스배달은 진짜 집나간 아이들이 주로 한다.보통 아이들은 유흥목적의 용돈을 조달하기 위해 과목당 4만∼5만원하는 학원비를 빼돌린다.순수 유흥비 마련을 위한 ‘일락’(일일록카페)도 흔한 풍경이다.

대학입시라는 목표는 아직 절대적이다.서울 중산층 아파트촌의 한 고교교사는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대학은 가야한다고,더 잘 놀기 위해서라도 대학은 가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한다.고교중퇴 학력을 자랑하는 서태지처럼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다른 길을 찾겠다고 생각하는 고교생도 있기는 하다.하지만 서태지의 신화가 일반화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다.

조혜정 교수는 90년대의 10대들이 놓인 우리 사회환경을 ‘본격적인 소비자본주의’로 규정한다.대중문화니,패션이니 각종 소비재산업은 이들 10대들을 1등 소비자로 대우하고,다양한 신제품으로 끊임없이 유혹을 던지고 있지만 교육서비스와 관련환경은 80년대식 획일화된 상품을 내놓는데 그치고 있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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