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수치심도 감춘다-배꼽노출의 감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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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여름에 배꼽을 드러낸 여자들의 배꼽과 그 언저리를 골똘히 들여다 본 적이 있었다.여자의 배꼽은 통념적으*로 옷에 가리워져 있어야 마땅한 부위이기는 하지만,그것들이 한 풍속의 현상으로 옷밖으로 노출돼 있을 때 그것들을 관찰하고 분류하는 일이 그다지파렴치한 일은 아닐 터다.
내가 놀란 것은 그 여러 배꼽들의 개별성과 다양성이었다.그것들의 깊이와 그늘과 주름의 질감과 그 주변의 색깔의 다양성은 경이로웠다.거기에 어떤 계통을 세운다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아직도 인류의 종족 안에 그같은 개별성과 다 양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느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은 내 마음속에서,어떤 특정한 배꼽은 다른 많은 배꼽보다.뛰어나게 아름답다'는 느낌이 떠오르는,이 난해한 마음의 작용이었다.
나는 그 마음의 작용이 무엇이었던지를 결국 설명하지 못한다.
그 후 들으니 배꼽 성형수술이 유행이라는 것이었다.결국 여자들의 배꼽까지도 몇 개의 모드에 따라 유형화되고 획일화되리라는 예감은 우울했다.나는 모든 여자들의 배꼽들이 시원 (始原)의 무질서와 다양성 속에서 계통없이 살아있기를 바랐다.그 무질서의건강함에 비할진대,특정 배꼽에 대한 나의 선호는 그 얼마나 몰염치하고도 편협한 아집일 것인가.
인간의 몸은 그 스스로 자족적(自足的)인 질서와 가치를 지닌우주다.그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몸인 동시에 다른 어떤 타자의 몸과도 섞일 수 없고 유형지을 수 없는,개별적이고도 고립된 실존이다.몸이 아름답고 몸이 존엄한 까닭은 그 몸 이 보편적인 인류의 몸이 아니라 고립된 개인의 몸이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인류문명의 역사에 따르면 그 아름다운 몸 안에는 수치와 죄가 또한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돼있다.그 수치와 죄 역시 보편성과고립성의 두 국면을 동시에 내포함 으로써 긴장돼 있다.
실용적인 목적을 제외한다면 여자들의 옷은 그 아름다움과 수치사이의 배반과 타협의 산물로 존재해왔던 것같다.배꼽을 드러낸 *여자들의 그 손바닥만한 옷은 문명이 인류에게 가하는 하중으로 찢어질듯 팽팽하게 긴장돼 있고,그 여자들의 드러난 배꼽과 그 언저리는 드러난 수치의 도발적인 힘으로 빛난다.그 언저리가 도발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거기에서 아름다움과 수치가 동시에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화폭은 아름다움이 수치를 사면받을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다.자유를 향한 인간의 열망이 화폭이라는 공간을 열어놓기는했지만,인간은 화폭과 현실을 완벽히 분리시키지 못한다.화폭에 대해 통념적 현실의 인습을 적용할 때 소설가 장 정일은 기소되는 것이고,화폭 속의 자유를 현실로 끌어내릴 때 여름의 여자들은 배꼽을 드러내놓고 거리를 활보한다.
현실로부터 차단된 화폭의 공간을 설정한 인간은 그러나 화폭 따로 현실 따로의 문명을 감당해내지 못한다.그 양자가 격절되는삶은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고,그 양자가 뒤섞이는 삶은 때때로견딜 수 없이 수치스럽기 때문이다.위선은 인간 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고 거기에 질서를 부여해 준다.위선은 보호받을 가치가 있어 보인다.그러므로 화폭과 현실의 이 영원한 전쟁 속에서 드러난 여자들의 배꼽과 그 언저리는 권장받을 권리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매도되지 않을 권리는 있 을 터다.여자들이 극성스럽게도 배꼽을 드러내고 있던 어느 여름에 전국 경찰들은 드러난 배꼽을 박멸하는 작전에 나섰고 갓 쓴 유림의 어른들은 가슴을 치며 이 세계의 타락을 개탄했었다.그리고 입추가 지나 선들바람이 불더니 여자들은 또 옷으로 배꼽을 가렸다.천지의 배꼽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나는 또 새로운 여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김훈〈문학평론가.TV저널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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