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태안의 기적’을 이어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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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꼭 1년 전 청정 해안인 충남 태안의 앞바다는 엄청난 양의 유조선 기름오염으로 인해 절망으로 뒤덮였었다. 이 일대 생태계를 질식시킨 검은 재앙이 10년은 더 갈 것이라고 온 나라가 걱정했었다. 그러나 전국에서 달려온 130만 자원봉사자들의 땀과 정성으로 태안의 해변은 어느새 맑고 깨끗한 옛 모습을 되찾았다. 그래서 지난여름 그 지역 해수욕장들은 모두 개장을 했고, 사라졌던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찾아들고 있다.

아름다운 바다를 다시 살려낸 ‘태안의 기적’은 분명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자원봉사운동의 금자탑으로 기록될 만한 사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충남도는 세계자원봉사자의 날(12월 5일)을 맞아 1만 명의 태안 자원봉사자들을 전국에서 초청, 보은행사를 하기로 했다. 정부와 민간 자원봉사계 역시 훈·포장 시상식 등 전국자원봉사자대회를 그곳에서 함께 연다. 태안사태 1주년을 맞아 민관이 함께 자원봉사를 통해 일궈낸 성과를 흐뭇한 눈으로 돌아보고 새롭게 범국민 자원봉사의 의지를 다지자는 취지다.

오늘날 자원봉사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자원봉사섹터(volunteer Sector)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정부 및 기업 부문과 더불어 ‘새로운 협치(New Governance)’의 한 축으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으로서뿐 아니라 국민 통합의 촉매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매서운 겨울과 동시적으로 몰아닥친 경제난 추위로 모든 사람의 마음마저 얼어붙고 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 필요하고 절실한 것이 더불어 함께 사는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온기를 함께 나누는 나눔의 정신, 자원봉사의 정신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다.

이럴 때 1주년을 맞는 태안의 행사는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국민 모두 한마음이 되어 검은 기름띠를 걷어내며 땀방울을 흘렸던 그 나눔의 정신을 새롭게 다지는 뜻깊은 행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 행사에 이명박 대통령은 참석하지 못한다는 소식이다. 대신 국무총리가 참석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의 일정이 바쁜 때문이겠지만 자원봉사 관계자로서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뿐 아니다. 여야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을 태안 1주년 기념식에서 쉽게 보지 못할 듯하다. 지난 대선과 총선 때 자주 태안을 찾아 팔을 걷어붙이던 그 정성이라면 초청을 받지 못해도 자진해 참석할 만도 한데 안타깝기조차 하다.

자원봉사의 확산은 누구보다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있어야 큰 효과가 있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단어가 의미하는 그것이다. 현 정부가 주요 국정지표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국민 통합의 길도 바로 그곳에 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 버락 오바마가 취임도 하기 전에 자원봉사를 중요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도 시카고 빈민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살았지만 최근의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운동의 진작·강화가 필수적인 요소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처사는 미국과는 딴판이다. 자원봉사의 진흥은커녕 기존의 총리실 산하 민관 합동의 자원봉사진흥위원회마저 폐지하고 이 업무를 행정안전부가 주도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자원봉사는 누가 시켜서, 또는 무슨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닌 글자 그대로 ‘스스로 원해서 받들고 섬기는’ 것이다. 성숙한 시민의 덕목이자 민간 차원의 자발적 행복 가꾸기 실천운동이다. 따라서 자원봉사운동을 관(官) 주도로 이끌어 가겠다는 것은 큰 착각이다. 자원봉사운동이 관 주도 내지 관변화가 되면 민간의 순수성·자발성은 훼손되고 만다. 태안 ‘기적’ 1주년을 맞아 자원봉사에 대한 정부의 올바른 진흥정책을 촉구한다.

이제훈 한국자원봉사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