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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업체들 ‘차이나 엑소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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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의류업체 톰보이의 글로벌 소싱 담당 직원 3명은 최근 베트남 호찌민·하노이로 출장을 다녀왔다. 중국 다롄에서 생산하던 블라우스와 점퍼류를 대신 만들 공장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 회사는 올 초까지만 해도 중국 생산물량이 전체의 58%에 달했다. 내년에는 이 비중을 45%까지 낮춘다는 계획이다. 이종환 대리는 “인건비와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중국 생산 비용이 연초보다 50% 정도 늘어났다”며 “공임이 많이 드는 블라우스·셔츠류를 베트남에서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일부 생산 물량을 다롄보다 인건비가 싼 내륙도시 친양현(허난성)으로 돌리기도 했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의류업체들이 짐을 싸고 있다. ‘신노동법’ 시행으로 인건비가 크게 오른 데다 환율 상승까지 겹치자 생산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베트남·미얀마로 생산지를 옮기는 회사가 많고 일부는 아예 국내로 돌아오기도 한다.

◆생산비 싼 곳으로 탈출=톰보이의 다롄 납품공장이 근로자 한 명에게 주는 월급은 평균 1400위안. 지난해만 해도 1000위안이던 것이 1년 사이 이렇게 올랐다. 근로조건을 개선시키는 내용의 신노동법이 발효되면서 중국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이 대개 20~30%는 올랐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1년 사이 급등한 위안화 환율을 감안하면 실제 지급하는 돈이 약 12만원에서 30만원으로 두 배를 훨씬 넘는다. 게다가 대부분이 현지에서 조달하는 원단·부자재 대금을 달러로 지급하다 보니 연초에 비해 50% 정도 오른 달러 환율도 부담을 가중시켰다.

탈(脫)중국 러시에 앞장선 업체들은 신원·더베이직하우스·이랜드 등 대부분 중저가 캐주얼 의류 업체다. 제품 단가가 낮아 생산 비용이 조금만 올라도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경기 불황으로 옷이 워낙 안 팔리니 생산비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한 중견 패션업체 관계자는 “값을 올릴 엄두를 못 내니 원가를 줄이기 위해 원단 수준을 낮추는 브랜드가 많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떠오른 대표 지역은 베트남이다. 과거엔 그곳에 미국·유럽 의류업체의 주문이 많아 국내 중견 업체들은 들어가기 어려웠던 곳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베트남의 수주가 급감하며 소량의 주문도 가능해졌다는 것.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인한 관세 혜택을 기대하는 수요도 있다. 올해 두 번 베트남을 방문했다는 FnC코오롱의 김영식 소싱 담당 부장은 “베트남 생산을 알선해주는 한국 업체가 빠르게 늘고 있다. 가장 경쟁력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예신퍼슨스의 캐주얼 브랜드 마루·마루아이를 담당하는 최원규 차장은 최근 인도네시아 공장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있다. 그는 “그곳도 인건비가 싸고 관세가 낮다고 하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업체들이 새 공장 세울 곳으로 스리랑카·인도까지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로 돌아온 업체도=아예 국내 공장을 찾는 업체도 있다. 트라이브랜즈는 중국 직영 공장의 생산 물량을 대폭 줄일 계획이다. 시정인 홍보대리는 “현재로선 중국이나 국내 공장이나 생산 단가 차이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같은 조건이라면 빠르게 유행을 반영할 수 있는 국내 생산을 늘리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도 인플레와 인건비 상승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싼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의류업체가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질 것이라는 것. 한국패션협회 김성찬 부장은 “현재 중국과 한국의 생산비 차이는 불과 15%에 불과한데, 베트남도 몇 년 뒤엔 중국 수준으로 생산비가 오를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며 “디자인·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내수뿐 아니라 수출 판로를 뚫는 업체들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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