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화교 돈줄 '홍콩반환' 앞두고 싱가포르로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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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동남아 화교자금의 대이동이 시작됐다.홍콩.인도네시아 화교기업들의 싱가포르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가 하면,싱가포르의 화교기업들은 거꾸로 홍콩에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은 홍콩반환과 인도네시아의 정치불안이다. 최근 홍콩의 룽기(龍記)그룹이 계열사를 새로 싱가포르 증시에상장시킴으로써 싱가포르에 상장된 홍콩기업은 23개사로 늘어났다.표면적 이유는.동남아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다.그러나 실은 홍콩반환 이후.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자금줄 을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있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대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지난해 1~10월중 대만기업의 싱가포르 투자는 1억5천9백만달러로 홍콩에 대한 투자금액의 3배에 달했다.반환이후 홍콩내 대만기업의 지위가 불안할 것이라는판단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화교기업들은 약간 다른 양상이다.수하르토대통령 집안과 가까운 화교기업들이 싱가포르 기업을 잇따라 사들이고 있는것이다.이들의 싱가포르 진출은 지난해 7월 수하르토대통령의 건강악화설이 불거진 후부터 줄을 이었다.국내정치가 불안해지면 반드시 화교기업에 대한 폭동이 일어났던 역사적 경험이 자금이동을촉발시켰다는 얘기다. 싱가포르 화교기업들은 홍콩반환을 중국본토 진출의 기회로 삼겠다는 적극적 태도다.이들은 직접투자보다 다른 화교기업과 업무제휴나 공동사업 형태로 홍콩진출을 꾀하고 있다. 최근 동남아 화교기업들의 움직임가운데 또 한가지 특징은 유대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화교자본이 대규모로 동남아 각국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혈연.지연등 종래의 인맥개념으로는 더이상사업을 확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이제는 사업 상 이해만 맞아떨어지면 어떤 나라의 화교기업과도 손을 잡고 있다.동남아 화교기업의 네트워크가.혈연-지연'에서.동포'로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중국.홍콩.싱가포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대만 등지를 망라하는 이른바.대화교(大華僑)경제권' 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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