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선 업무능률 오르고, 집에선 일찍 들어오니 좋아하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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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03면

“과음이 자랑이 되는 음주문화를 바꾸면 개인은 물론 회사 경쟁력이 올라갑니다.”
SK에너지 박상훈(울산공장장·사진) 부사장은 “음주문화 개선 캠페인을 단발성이 아닌 최우선 경영방침의 하나로 시스템화했다”고 말했다. 금연운동을 하는 기업이나 기관은 많지만 절주 운동을, 그것도 경영방침의 하나로 추진하기는 극히 이례적이다.

SK에너지 울산공장장 박상훈 부사장

-SK에너지 울산공장에 음주와 관련해 심각한 문제라도 생겼나.
“음주로 인한 우리나라의 손실이 국민총생산(GNP)의 2.9%인 20조원(보건복지부 2004년 자료)이나 되지만 울산은 특히 더 심하다.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과 공장이 밀집해 회식문화가 발달한 결과다. 울산 전체의 폭음률은 전국 평균보다 20% 이상 높고, 제조업체 근로자의 경우 이보다 10%쯤 더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집단문화가 뿌리내리기는 SK에너지 울산공장도 예외가 아니다. 일주일에 한 차례 이상 회식을 하고, 대개는 회식 때 2, 3차를 간다. 그런데 직원들도 점차 고령화되면서 술에 부대끼는 사람이 늘어갔다. 지각·결근하거나 이유 없이 연가 신청을 하고, 출근해도 평소보다 업무능률이 떨어지고, 가정에도 문제가 생기고….”

-문제를 알면서도 다른 기업에서는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우리 공장에서도 ‘술은 개인 취향이고 습관인데 회사에서 나선다고 되겠느냐. 통제가 가능하냐’는 얘기도 있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강제성을 배제하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안전환경보건본부 간부들과 머리를 맞댄 끝에 나온 결론이 ‘원하는 사람에게서 술잔을 뺏지는 말되 남에게 억지로 마시도록 강요하는 분위기만 바꿔도 상당한 성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전 직원을 상대로 강요된 음주를 방지하는 아이디어를 모았다. 이 아이디어를 집약한 게 ‘112, 5-No’ 슬로건이다. 이걸 회식 시작 때 자연스럽게 함께 외치도록 플래카드도 내걸고 안내문도 돌려 분위기를 잡는 게 회사의 몫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간질환자가 줄어드는 등 효과가 나타난 걸 보면 제법 잘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

-직장인 음주문화의 폐단은.
“회식 자리에 가 보면 2차나 폭탄주를 원하는 사람이 3분의 1, 3분의 1은 그저 그만, 나머지는 싫어해요. 그런데도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라도 받은 듯 전체가 끌려간다. 상사는 부하 직원들이 술을 따라주기를 원하고 부하는 술을 따르면서 상사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하고, 그러다 보니 상사가 2차를 가면 대부분 부하들도 따라간다. 상사 역시 싫어도 리더십에 지장이 생길까 봐 나선 거고. 2, 3차를 거치면서 취하다 보면 폭탄주가 오가고 원샷하기 등 부정적 음주문화가 판을 친다. 술 못 먹는 사람에겐 회식 자리가 바로 지옥이 된다.”

-임직원 가족들에게도 인기가 좋을 듯하다.
“과거보다 가장이 일찍 들어오는 날이 많으니 당연히 집에서 좋아한다. 앞으로는 가정에도 통신문을 보내 가족들의 지지를 확고히 끌어낼 생각이다.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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