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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쁜 것도 죄가 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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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회사일에만 몰두하다가는 ‘가정 부도’를 맞을 수도 있다.

이코노미스트 건설 관련 업체 CEO인 K(남·50)씨는 최근 부부관계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사업을 핑계로 잦은 술자리에 도박, 외박을 일삼아 아내를 괴롭힌 대가로 언제 이혼장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막내가 대학만 들어가면 이혼하겠다”고 입버릇처럼 읊어대던 아내의 말이 허언(虛言)이 아님을 그가 깨달은 것은 최근이다.

CEO가 조심해야 할 이혼 사유 #부부관계 소홀하면 이혼 사유 … 아내 부정으로 헤어져도 재산 떼줘야

“재산분할청구가 어떻고, 위자료가 어떻고 하며 재산의 절반은 자기 몫이라고 기세 등등하게 나오기에 알아봤더니 아는 변호사를 만나 물어봤던 모양이에요. 막내가 내후년이면 수능을 치를 텐데 손 놓고 있다가는 사업체도 가정도 다 풍비박산될 판입니다.”

더 큰 고민은 아내가 사업체 재산과 회사 운영 기밀에 대해 속속들이 꿰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이혼 당할 지경이라 찍소리 못하고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어떻게든 아내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 중인 것.

용어설명

재산분할청구권=혼인 중 형성한 재산에 대해 이혼 시 배우자의 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를 인정해 재산의 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

“한 번 부도를 겪고 다시 일으킨 사업이라 그동안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경영에만 몰두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가정에 좀 신경을 써서 아내 마음이 누그러지길 바라야지요.”

요즘 CEO들은 경제 위기로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트를 타는 심정이다. 그렇다고 회사 일에만 ‘올인’하다가는 자칫 ‘가정 위기’를 맞을 수 있다. K씨의 사례처럼 CEO들의 이혼을 부르는 가장 흔한 행태는 접대 술자리 등으로 인한 늦은 귀가, 부부관계 등한시, 스트레스로 인한 화풀이로 배우자에게 내뱉는 모욕적인 언사, 바쁘다는 이유로 자녀양육 등 가정 일을 소홀히 하는 것 등이 있다.

회사 일이 바빠서 늦게 귀가하고 부부관계를 등한시했다고 이혼사유가 될까? 많은 CEO는 ‘설마’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난 4월 끝난 SBS TV 생활법률 프로그램 ‘솔로몬의 선택’에서 ‘회사 일에 매진하다 부부생활에 문제가 생긴 남편, 이혼사유가 될까?’라는 주제가 등장한 적이 있다.

당시 법률자문단으로 출연한 4명의 변호사의 열띤 논쟁이 벌어지며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가족을 잘 돌보기 위해 회사 일에 매진한 걸 두고 배우자에 대한 애정 표현을 등한시했다고 이혼사유가 되겠느냐”라는 주장을 폈고, 반대편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자 노력하고 돈을 많이 벌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죄 없는 배우자를 독수공방하게 하면 당연히 이혼사유가 된다”고 팽팽히 맞섰다.

이는 회사와 가정을 돌보느라 이중으로 노력해야 하는 CEO 등 우리 사회 리더들의 고충을 느끼게 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CEO 회원을 대상으로 ‘리더들이 조심해야 할 이혼사유 Best!’라는 제목으로 최근 동영상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를 한 법무법인 퍼스트 금태섭 변호사에 따르면 거래처 접대를 위해 매일 술자리를 갖고 늦게 귀가하는 것, 고액의 연봉을 받거나 수익을 올리면서 정확한 액수를 배우자에게 숨기는 것,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부부관계를 등한시하는 것, 아내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 외도 등이 특히 CEO들이 조심해야 할 이혼사유다.

우리나라 민법 제840조에 따르면 ‘재판상 이혼사유’를 여섯 가지로 정해놓고 있다. ▶배우자에게 부정행위가 있었을 때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배우자 또는 그 배우자의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자신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배우자의 생사가 3년간 분명하지 아니한 때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다.

하지만 재판상 이혼사유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배우자의 생사가 3년간 분명하지 아니한 때’는 이혼사유가 비교적 정확하지만,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는 과연 어떤 경우가 ‘심히 부당한 대우’에 해당한다고 할지 선뜻 판단하기 어렵다.

특히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항목은 그 범위가 매우 포괄적이고 불분명하다. 따라서 재판상 이혼사유 가운데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라는 항목은 회사 일로 바쁜 CEO들이 특히 조심해야 할 이혼사유에 해당한다.

금 변호사는 “접대로 인한 늦은 귀가나 연봉 감추기 등은 결국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고 봐야 한다. 또 부부관계를 등한시한 기간이 단기간인지 장기간인지, 제3자가 보기에도 모욕적인 언행을 자주 했는지 등 모든 정황을 판단해서 법원이 결정한다. 다시 말해 개개인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이혼사유가 다양해진다.

통계청의 이혼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이혼건수는 12만4600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협의이혼은 84.7%, 재판이혼은 15.2%. 30~40대 연령층의 이혼건수가 전체의 72%를 차지했고, 주된 이혼사유는 성격차이가 46.8%, 다음으로 경제문제가 13.6%를 차지했다.

소송 당하면 경제적으로 큰 타격

CEO가 조심해야 할 이혼사유 7가지

- 부정행위(외도)
- 부부관계 등한시
- 잦은 술자리와 늦은 귀가
- 잦은 외박
- 수입을 속이거나 감추기
- 배우자를 인격적으로 모독·무시하기
- 자녀양육 등 가정 일에 무관심

이혼한 부부의 평균연령은 남자가 43.2세, 여자가 39.5세로 남자의 경우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 한창 왕성하게 일할 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를 경영하는 CEO나 의사, 변호사 등 지도층의 경우 일반인의 이혼과 비교할 때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이혼소송에 휘말리면 회사를 경영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기업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줄 수도 있다. 나아가 이혼 시 재산분할청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전 재산의 최소 30~50%까지 내놓아야 하고 위자료를 포함하면 재정적, 경제적 타격이 일반인에 비해 매우 큰 편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회사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혼사건 전문 변호사들에 따르면 2000년을 전후해 IT벤처 붐이 일었던 시기 1세대 벤처기업 CEO들 중 상당수가 일이 바빠 가정과 부부관계를 등한시했다는 이유로 아내로부터 이혼 당했다고 한다.

안미영 변호사(법무법인 서울)는 “벤처 붐 당시 이혼에 이른 벤처 기업가들 가운데 100억원대 재산가가 많았는데 이들은 아내에게 통상 30억원 정도를 떼주는 조건으로 이혼에 합의한 경우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안 변호사에 따르면 CEO의 경우 재판상 이혼으로 가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상담은 많이 하지만 대외적인 이미지를 고려해 조용히 끝내고 싶어 한다.

안 변호사는 “다만 재산분할 문제로 다툴 때는 재판으로 가는 경우도 간혹 있다. CEO가 재판이혼으로 가는 경우는 재산분할에 대한 협의에서 요구하는 돈의 액수 차이가 클 경우다. 어차피 이혼을 결정할 경우 가장 많이 다투는 것이 재산분할인데 이 경우 아내에게 ‘네가 한 일이 뭐가 있느냐, 한 푼도 못 준다’고 나오는 CEO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혼 시 아내에게 한 푼도 안 주고 헤어지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재산분할청구권 때문이고 이혼을 앞둔 CEO들이 가장 억울해 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금 변호사에 따르면 재산분할청구권이 법적으로 가능해진 90년대 초는 사람들이 그 위력을 잘 몰랐지만 판례가 쌓이면서 이제 상식이 됐다.

“판례상 가장 낮은 게 가사노동을 인정한 재산 30% 분할이다. 중소기업 CEO의 경우 보통 남편이 대표로, 아내가 이사나 부사장 등으로 등재된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50%까지 재산분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이혼소송을 보면 위자료는 그 액수가 많지 않다. 통상 3000만원 정도이고 아내 쪽의 책임으로 이혼에 이르게 될 경우 위자료를 남편이 대신 받기 때문에 CEO의 경우 위자료는 상대적으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재산분할청구권을 따지고 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내가 전업주부로 집에서 가사만 돌봤다 해도 통상 결혼생활이 3년을 넘겼고 자녀가 있으면 배우자가 재산 형성에 기여한 몫을 30% 정도 인정해주고 있다. 결혼생활 기간과 배우자의 기여도에 따라 재산의 최대 50%까지도 상대 몫으로 인정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청구권의 흐름을 보면 가사노동에만 종사했더라도 여성에 대한 재산분할 비율을 50% 가깝게 산정하는 판결이 적지 않다. 결혼생활에서 가사노동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인식 변화가 법원 판결에도 반영되고 있는 추세인 것. 따라서 재산이 많은 CEO가 이혼할 때 받는 경제적 타격은 일반인에 비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CEO를 남편으로 둔 여성들의 부정행위가 많아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여성 CEO가 늘면서 경제적 자립과 모임 등 사회활동으로 남성들을 많이 접촉하면서 여성 CEO의 부정행위도 적지 않다. 전업주부에서 이미지컨설턴트로 변신해 회사까지 차린 40대 초반 L씨는 잦은 외출과 늦은 귀가로 인해 가사와 자녀양육을 소홀히 했고, 사업상 만난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이혼소송을 당했다.

재판 결과 L씨는 남편에게 위자료 4000만원과 재산분할금 1억원을 지불해야 했다. 최근 통계도 법조계의 지적을 뒷받침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이혼사건분석결과보고’에 따르면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인해 이혼하는 부부 10쌍 중 4쌍은 여자 쪽의 부정행위가 원인이 되고 있다. 2006년 한 해 동안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인한 재판상 이혼사건 1만1244건 가운데 여자 쪽 부정행위에 따른 이혼사건이 4467건으로 39.7%를 차지했다.

이는 1999년 36.2%에 비해 3.5%포인트 늘어난 수치로 2004년 38.7%, 2005년 39% 등 증가 추세다. 여자 쪽 외도로 이혼을 한다고 해서 남자 쪽의 경제적 손실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아내의 잘못으로 이혼에 이르렀을 경우 예를 들어 3000만원의 위자료를 남편이 받는 대신 재산분할청구에서는 아내의 잘못이 재산분할금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CEO 가운데 이혼 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40대 초반의 CEO L씨는 100억원대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외도한 사실을 알게 됐고, 들통난 사실을 알게 된 아내 쪽에서 오히려 이혼을 요구해 왔다. L씨는 고민 끝에 재판까지 가지 않고 시가 17억원의 아파트를 아내에게 주는 조건으로 이혼에 합의했다. 어차피 재판까지 가봐야 그가 아내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위자료는 최대 5000만원 정도지만 아내가 재산분할을 청구하면 최소 30%의 재산을 내줘야 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통상 재산의 30~50% 떼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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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변호사는 “자수성가한 CEO의 경우 아내가 바람이 난 뒤 용서를 비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혼하겠다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예가 적지 않다.

과거 같으면 빈손으로 당장 쫓겨날 상황이지만 요즘은 이 경우도 최소 재산의 30%를 아내에게 분할해 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EO의 재판상 이혼소송을 어렵게 하는 이유는 회사 이미지가 나빠질 것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재산을 타인 명의로 해놓았다든가 세금 회피를 위한 이중장부 기재 등 회사의 재무상태를 아내가 속속들이 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내에게 약점이 잡힌 경우 재판까지 가면 의외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것이다. CEO들이 알아둬야 할 것은 최근 이혼소송에서 ‘파탄주의’에 따른 선고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대부분 기각됐다.

다시 말해 잘못이 있는 사람이 이혼소송을 제기해봤자 이혼판결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탄주의’는 가정파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계없이 결혼이 파탄에 빠진 경우 이혼을 허가해 주고 있는 것으로 과거에 비해 이혼사유를 폭넓게 해석하는 것이다.

현재 법원 내부 통신망 게시판에는 ‘파탄주의’로 가야 한다는 글들이 올라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는 재산분할청구에서 남녀 비율을 법적으로 정해놓지 않아 대개 30~50% 선에서 재산분할이 결정됐지만 남녀동등의 원칙에 따라 재산분할청구 비율을 5 대 5로 못 박자는 분위기가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지난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이계경 전 의원의 대표발의로 61명의 의원이 ‘민법일부개정안’을 제출했는데 내용 중에 재산분할청구 비율을 5 대 5로 하는 것이 포함돼 있었다. 이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17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폐기 됐지만 이런 움직임은 언제든 다시 불붙을 수 있다.

“사업이 바쁘다, 어렵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아내 마음을 가정과 남편에게 붙잡아 둘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위자료 몇 푼 쥐여주고 이혼할 수 있는 시대는 더더욱 아니다. 아내 쪽이 잘못해도 재산을 떼어주고 이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회사 경영뿐 아니라 현명한 지혜로 가정경영까지 잘할 수 있는 균형 잡힌 CEO를 원하는 시대다.

박은경 객원기자·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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