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공항 2곳에 비상사태 선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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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태국 정부가 27일 반정부 시위대가 점거한 방콕의 2개 공항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공항을 점거하고 있는 시위대를 해산하겠다는 것이다. 태국 헌법은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에 대해서는 총리가 시민의 기본법을 제한하고 병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는 사흘째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점거한 데 이어 국내선 공항인 방콕의 돈므앙 공항도 점거해 국내선 운항이 중단됐다. 이 때문에 한국인 2000여 명 등 외국인 6000여 명은 현지에서 발이 묶인 상태다. 또 군부가 군 수뇌부를 경질하려는 정부 계획에 반발해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하고 있다. 태국 군 당국의 부인에도 군 병력이 이날 이동을 시작했다는 목격담도 흘러 나오면서 정정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투자를 포기하는 외국인이 늘면서 태국 경제는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다음 달로 예정된 아세안+3(한국·중국·일본) 정상회담도 연기될 전망이다.

◆국내선 공항 폐쇄=수완나품 공항을 점거하고 있는 반정부 단체 국민민주주의연대(PAD) 핵심지도자인 태국의 미디어 재벌 손티 림통쿨은 26일 밤 “시위 지도부는 솜차이 총리가 퇴진할 때까지 공항 점거농성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 이후 시위대 3000여 명은 방콕 국내선 공항인 돈므앙 공항으로 몰려가 청사를 점거하고 출입 도로를 봉쇄했다. 이 공항은 수완나품 공항이 국제공항으로 들어선 뒤 현재는 국내선 공항으로 이용되고 있다. 태국 정부는 지난 8월 말 방콕 중심가의 청사가 PAD 시위대에 점거되자 이곳 대합실을 임시청사로 사용해 왔다. 돈므앙 공항마저 폐쇄되면서 방콕을 거쳐 지방 관광지로 떠난 해외 관광객들 수천 명도 지방에서 발이 묶였다. 태국 항공업계는 항공사마다 하루 손실액이 수억 바트에 달하고 있다.

◆쿠데타 설로 술렁=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다가 26일 귀국한 솜차이 웡사왓 총리는 TV로 생중계된 연설을 통해 총리직 퇴진이나 의회 해산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서 군부 실세인 아누퐁 파오친다 육참총장은 기자회견에서 정부에 대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경제계는 군부 편을 들고 있다.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26일 군과 재계 핵심인사들이 방콕에서 회의를 열어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만이 비상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는 데 합의했다. 방콕 인디펜던트지는 “군의 쿠데타 설 부인에도 일부에서는 군이 조만간 쿠데타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한국 교민 등 목격자들은 27일 방콕 시내 실롬 등 주요 거리에 군 병력이 배치됐으며, 방콕 외곽에서도 군이 이동하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도 쿠데타 소문에 따라 전 직원에게 대기 명령을 내렸다. 태국 군 대변인인 순세른 카에우쿰네르드 대령은 그러나 “전략적인 병력 이동일 뿐”이라며 부인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떠나가는 투자자들=태국의 대형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콜리어스 인터내셔널은 26일 동유럽 투자자 수명으로부터 태국 내 투자상담 취소 통보를 받았다. 반정부 시위가 주원인이다. 전자제품 부품업체인 아피코 하이테크사도 25일 유럽 파트너로부터 수십억 바트에 달하는 투자협상을 중단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회사 엡 사장은 “수억 바트에 달하는 큰 투자는 반드시 현장에 와서 상담을 해야 하는데, 공항이 막혀 있으니 취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태국 항공화물업협회 카셈 잘리야와퉁 회장은 하루 1000t에 달하던 항공화물이 말레이시아 페낭을 통해 들어오면서 물류비가 50%나 올랐다고 하소연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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