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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그들>귀순요리사 강봉학씨가 만드는 북한음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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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불쑥 그를 찾아갔을 때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떠오른 것은 웬 일이었을까..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빛바랜 편지.추수가 끝난 후의 텅빈 논과 밭.오뉴월의 장 례행렬.바이올린의 G현.산길에 흩어진 비둘기의 깃.' 여기에 보탤만한 또다른 모습 하나-마루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은채 만두를 빚는 한귀순자.그의 손끝은 날렵하다.하지만 표정은 어둡다.손맛을 전수해준 북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그와 얼굴을 맞댄채 반죽을 하고 있는 50대 중년의 여인에게서 그는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60 년생으로 함경남도 신포출신인 강봉학씨.본래 그는 맛에 대한 열정 하나로 지난 92년 유럽여행중 독일에서 남한행 카드를 택했다.러시아 하바로프스크의 북한 임업대표부 요리사 생활을하던그는 문득 자신의 포부를 펴기엔 세상이 너무 좁게 여겨졌던것이다.당초 영국이나 프랑스로 망명해 요리사의 꿈을 키우려 했으나 언어와 맛의 장벽을 뚫지 못해 행선지를 바꿨다.그런 탓에그에겐 다른 귀순자들처럼 복잡한 이데올로기나 이해관계의 갈등이얽혀 있지 않다. 그는 귀순후 1년여 적응기간을 거쳐 맛에 대한 꿈을 펼치는 작업을 시작했다.94년 3월 경희호텔경영전문대 조리과에 입학했고 조리사 자격증도 땄다.그리고 남한 음식의 이해를 위해 전국을 돌며 각지의 음식맛을 익혔다.95년 가을 그는 서울 신라호텔에서.북한 요리축제'를 열었고 지난해에는 광주에서 열린 .김치 대축제'에 참가해 팔도전통 김치부문에서 우수상을 탔다. “남한 음식은 대체로 화려하고 자극적이다.전라도 김치의 경우젓갈이 너무 많이 들어가 짜다.경상도 음식은 너무 매운게 단점이다.한마디로 정리하면 북한 맛은 순리에 철저하다.맛보다 소화기능을 먼저 따지고 특유의 담백성은 성인병을 미리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남한 음식은 이른바.갖은 양념'으로 새로운 맛을만들어내는 쪽이다.조미료의 쓰임새가 중요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그러나 북에선 양념에 의한 맛보다 재료의 어울림을 중시한다.그래서 북한 음식은 소박하고 시원스럽다.지난해 7월 대전에서 선보인 북한 음식 전문점 봉학관은 한동안 화제를 뿌렸다.하지만 자본을 댄 동업자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10월말 그는 결연을 선언하고 독자적인 길을 택했다.아파트를 판 전재산 1억여원으로 경기도 용인 민속촌 가는 길목에 다시 봉학관을 차렸던 것이다. 갈등과 결별의 사연을 묻는 말에 그는 차분함을 잃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며 말을 풀었다.“정말 내가 설움과 질시를당하는 마지막 귀순자이고 싶다.일부 매몰찬 사람들로 인해 탈북자중 많은 사람들이 다시 떠돌고 있다.물정을 잘 모른다 고 그렇게 냉대하고 이용하려드는….” 그러면서도 그는 특정인을 대놓고 비난할 심사가 아니었다. ***동업으로 아픔겪은후 .독립' “결과적으로 그것은 실패였고 나는 남한사회를 읽는 법을 배운 셈이 됐다.하지만 대전에서일하던 사람들이 이곳 용인까지 동행해줘 고맙기 그지 없다.매일반복되는 대전~용인 출퇴근,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그는 보답으로 봉학관을 법인화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만들 작정이다.가능하면 집도 사주고 미혼자들에겐 결혼 밑천도 대주고 말이다.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의 독신생활에 대한 대책에는 무관심하다.그리고 잇따르고 있는 봉 학관 체인사업 제의를 일단 뿌리치고 있다. “이름만 빌려주는 체인사업은 의미없다.돈벌이에 적절할지는 몰라도 맛의 전파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적어도 1개월 가량 현지에 머물면서 직접 요리를 만들어 보여야만 맛이 전수되는 것 아닌가.” ***이름대여 체인사업은 안해 대신 그는 영업을 끝내고 매일 밤 늦도록 집필에 매달려 있다.오는 6월말 .북한 맛 1백가지 요리'란 주제의 단행본 발간을 위해서다.북한요리 가공식품 공장설립은 그의 남은 꿈. 그는 본래 요리사가 아니었다.함남체육전문대를 나와 한동안 안전국에서 근무했고 86년 러시아 후방공급소로 직장을 옮겼다.다부진 체격조건으로 인해 임업대표부 간부식당 웨이터로 뽑혔는데 주방이 바쁠 때 요리를 거들다가 손맛을 인정받아 요리에 입문했다. “통일의 걸림돌로 남북간 문화의 이질감을 거론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맛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이쪽 사람들이 북한의 맛을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그 간격을 좁히는 첫 걸음이 될테니까.” 어쩌면 그의 발걸음은 지금부터 당차질지도 모를 일이다.우리를 슬프게 한 지난 사연들을 떨치고 우리 미각에 남은 공백을 채워줄 맛의 전도사로서의 길을 걸을 것이기에. 〈허의도 기자〉 맛깔스럽게 차려진 봉학순대와 막가리 만두.함경도식의 소박미가 넘친다. 만두를 빚는 강봉학씨의 손맛은 유별나다.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은 우리들의 냉대로 텅 비어 있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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