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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사람의 마음도 얻고 도시의 미래도 열죠

중앙일보

입력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는 화천 군수 정갑철(64) 씨. 자출문화가 서울의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출근 풍경이다. 정갑철 군수의 자출이력은 이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는 벌써 8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정갑철 군수야말로 트렌드를 꽤 앞서간 셈이다. 말끔한 양복차림에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선택한 그를 만나 숨길 수 없는 자전거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Walkholic(이하 WH) 매일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한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다 한번이면 몰라도 변변한 자전거 도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불편하지는 않나요?
정갑철(이하 정)
- 하하. 저는 사실 별로 불편하지 않습니다. 거리도 기껏해야 2km 남짓이거든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아요. 기관장이 돼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니 품위가 안 선다는 거죠.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종종 꾸지람도 하세요. 그때마다 ‘어르신들 찾아뵈려고 일부러 타고 다닌다’며 너스레를 떨고 넘어가죠. 또 사실 제 자전거가 출퇴근용인 동시에 업무용이거든요. 도로나 하천 공사 현장에 수시로 자전거를 타고 가서 곳곳을 둘러봅니다. 일이 얼마만큼 진척됐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운동 겸해서 한바퀴 쓱 둘러봅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아무래도 좀 꺼려하겠지요?

WH 자전거를 처음 타게 된 계기가 있을 텐데요.
-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했죠. 2001년 1월 강원도청에서 화천군 부군수로 자리를 옮겨왔어요. 강산이 변하고 고향을 찾아오게 됐는데, 고향땅도 고향사람들도 모두 낯설기 그지없었어요.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차를 타고 다니면 나는 편하지만, 정작 지역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았던 거죠. 그래서 직접 사람들 눈을 마주치고 인사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어요. 그게 자전거였던 거죠. 처음에는 주민들도 불편해하더군요. 선거철에나 한 번씩 보는 사람을 매일 마주치고 인사하려니 익숙지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 일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서로 편하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습니다. 크게 보자면 민심을 읽어 군정에 많은 보탬이 되었고 소소한 면으로 보자면 좋은 이웃과 친구들을 다양하게 얻은 셈이죠. 자전거가 대민 여론조사에는 최고로 좋더군요. 화천에서는 해마다 산천어 축제가 열리는데, 이게 모두 군민들의 아이디어예요.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주민들 만나 군민들 얘기에 귀 기울여 얻은 귀한 의견들이었죠.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니까 저만 좋은 게 아니라 마을이 다 같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WH 화천 군내에서는 자전거생활 정착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정-
지난 2006년, 처음으로 ‘양심 자전거’ 프로그램을 실시했습니다. 매년 자전거를 100대씩 구입해서 군청, 경찰서, 농협 등에 비치합니다. 주민들은 무료로 그걸 이용할 수 있고요. 그렇게 하면 짧은 거리를 움직이기 위해 자동차를 쓸 필요가 없으니 유류비가 절감되고 시내 공기도 지킬 수 있으며 주민들 건강도 좋아질 테니 얼마나 훌륭합니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갖다놓기 바쁘게 여기저기서 분실사고가 터지더군요. 상황이 그렇다보니 효율성이 없다면서 여기저기서 쓴 소리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음해에 또 자전거를 사들여 배치했습니다.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또 자전거들이 사라졌죠. 그래도 눈 하나 꿈쩍 않고 다시 자전거를 사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양심자전거가 비로소 제 몫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공용자전거 개념이 지역에 퍼진 겁니다. 지금은 주민들이 은행이나 기관업무를 보거나 가벼운 외출을 할 때 자전거를 사용하고 또 제자리에 갖다 둡니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지만, 자전거 문화를 만드는 것도 오랜 훈련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WH 화천에 최근에 자전거 호반도로를 만드셨습니다. 자전거 도시로 거듭날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정-
궁극적으로는 화천을 ‘슬로우시티’로 만들고 싶어요. 도로의 차량을 줄이고 가족과 연인들이 편하게 걷고 신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마을을 꿈꿔왔거든요. 화천은 이 나라 최고의 청정구역인데 공장을 세우거나 인구를 늘려서 발전시킨다는 발상은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지 인구 증가에 연연하지 않을 겁니다. 관내 인구가 3만 명이 넘으면 라이센스도 발부할 겁니다. 뉴질랜드나 기타 인구가 작은 나라들을 보세요. 겨우 이 삼만 인구만으로도 정말 잘 먹고 잘 살잖아요. 사람 수로 경쟁하는 마인드는 화천과 맞지 않습니다. 지금 화천강 호반에는 자전거 도로가 길게 뻗어있는데요 저는 그곳을 중심으로 자연친화적인 실버타운이 조성됐으면 합니다. 매일 아침 노부부가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것을 그려보세요. 은퇴 후 생활이라도 충분히 낭만적이지 않을까요? 맑다 못해 설탕처럼 달콤한 이곳의 공기와 강물과 숲과 산이 얼마나 큰 재산인지요. 제 후임으로 오는 군수가 느닷없이 공장을 세운다고 하면 저로서는 그때 가서 아무 힘도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화천만큼은 감성으로 가득 채워도 좋을 도시라는 것을요. 이곳에서는 감성을 팔아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해요. 그것이 사람과 마을과 환경 모두를 지키는 길이죠.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감히 꿈 꿀 수조차 없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자연과 감성마을이 있는 화천에서는 꿈같은 일만은 아니죠. 지금으로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주기를 살피며 군정을 열심히 펼치고 있습니다.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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