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상의 맛있는 나들이] 입에 들어간 건 '예술'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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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파리에서 음식 공부를 끝내고 10여년 만에 귀국한 젊은 친구는 생뚱맞게 음악을 들먹이며 이렇게 설명했다.

"프랑스 음식을 클래식 음악, 그중에서도 오페라로 받아들이고 즐기다보면 어렴풋이 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지난 주말 서울 신사동 시네시티 골목길에 있는 '르 꺄레(02-3445-7661)'란 프랑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그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붉은 벽돌이 주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의 아늑한 실내 공간. 테이블도 4인용 4개와 2인용 2개뿐이다. 일단 오페라의 웅장함이나 장엄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빛깔만 프랑스 레스토랑?'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래도 "코르동 블루 출신의 주인 겸 주방장이 혼을 담아내는 곳"이라며 안내해준 동반자를 고려해 마음을 추스르고 메뉴판을 펼쳤다. '브들레르의 서정' '모파상과 1885년' '저녁의 산들바람' 등 코스로 구성된 메뉴의 이름들이 우선 시적으로 다가온다.

"저희 레스토랑은 여덟가지 코스로 진행되는 프랑스 정찬이 기본인데 점심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면 다섯가지로 축약한 코스도 있습니다." 다음 약속이 있는 관계로 정찬은 포기하고 종업원의 추천에 따르기로 했다.

예쁜 그릇에 조그만 음식 세조각이 담겨서 나온다. 주문한 메뉴에 앞서 나오는 '아뮈즈 부슈'라는 것인데 주인이 서비스하는 음식이다. 모양이 너무 예뻐 음식이 아니라 공예품 같다. 워낙 오묘하게 만들어내 내용과 맛을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들다.

'이것이 음악으로 치면 서곡에 해당하겠군.' 입 안으로 잔잔한 감동을 느끼기 시작하기가 무섭게 코끝에 향긋한 빵 냄새가 다가온다. 까만 올리브 조각이 박힌 빵이 식탁에 오른 것. 곧바로 애피타이저인 에스카르고가 뒤를 따른다. 허브를 머금은 크림소스와 어우러져 역시 선뜻 먹기 아까울 정도다. 올리브 빵을 동원해 소스까지 남김없이 싹싹 비웠다. 수프도 놀라게 했다. 뜨거운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찬 카스파초다. 파프리카.토마토 등 생야채만을 갈아서 만드는데 부드럽고 산뜻하다.

다음은 메인요리인 안심스테이크. 진한 색깔의 소스에 한우 안심이 올려져 있다. 그 위에 새송이볶음, 싱그러운 샐러드, 종잇장 같은 연근이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한 폭의 수채화가 연상된다. 유학 시절 프랑스 시골 마을을 여행하면서 그린 그림을 표현했다고 한다.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떼와 하늘의 구름이란다. 손마디 두께의 고기 속이 붉은 색을 낸다. 주문한 대로 정확한 '미디엄 레어'다. 마지막으로 즉석에서 뽑은 원두커피와 앙증맞은 케이크와 쿠키 조각으로 식사가 끝났다.

오페라의 황홀경엔 이르지 못했지만 음식을 통해 실내 관현악의 포근함을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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