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선진국에서배운다>中.미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미국의 금융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진화돼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빅뱅'이라 할만한 단기간의 대개혁은 없었다. 주변 상황에 몰려 금융개혁이라는.구호'부터 내건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금융산업을 진화시켜온 힘이 정부 주도의 제도개혁이 아니라 민간금융기관의 치열한 시장경쟁,독립된 감독기관의합리적 감독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요즘 논의되는 금융개혁의 3가지 큰 줄기가 업무영역 규제완화.금리자유화.금융기관 대형화라면 미국에서는 이중 어느 한분야도정부가 주도하지 않았다.오히려 정부가 시장의 변화에 끌려가며 추인(追認)해주는 형태였다.
◇업무영역 규제완화=메릴린치 증권사는 70년대 후반.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돈은 다끌어 모은다'는 모토아래 예금처럼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채권으로 운용하는 신무기 CMA를 개발,은행영역으로 깊숙이 침입했다.신상품 하나 내놓으려면 이곳 저곳 뛰어다니며.결재'를 받다시피 해야하는 한국에선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후에 재무장관을 지낸 당시 리건 회장은“우리의 경쟁 상대는 증권사들이 아니라 시티은행.GM.시어즈다”고 선언했다.
증권.은행.소비자금융등의 업무 영역에 구애받지 않고 무한경쟁을 해나가겠다는 뜻이었다.
95년부터 논의되고 있는 은행법(글래스-스티걸 법)개정의 초점이.벽 허물기'에 맞춰지고 있는 것도 이런 추세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다.
최근에는 은행.증권뿐 아니라 보험까지 모두 겸업토록 하자는 안에 대해 보험업계가 그간의 반대 의사를 거둬들여 올해 미국의은행법 개정은 더욱 폭넓게 재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한곳에서 증권.보험.예금 서비스를 모두 취급하며 종합적인 투자수익률로 경쟁하게 되리라는게.정부의구상'아닌.시장에서의 전망'이다.
◇금리자유화=미국의 금리 자유화도 금리규제를 피해가려는 금융기관들의 신상품 개발이 주도했다.
70년대부터 은행.증권사들이 고수익 신종 금융상품들을 속속 개발하면서 정부의 금리 규제는 자연히 사라져갔다.
시장을 뒤따라가며 추인한 미국의 금리 자유화는 거액에서 소액으로,장기에서 단기의 순서로 이뤄지며 86년 모든 예금금리가 사실상 자유화됐다.
◇금융기관 대형화=90년말 1만2천여개에 이르던 미국 은행 수는 요즘 1만개에 못미친다.94년 주간(州間)은행업무 규제가풀린 이후 인수.합병은 더욱 촉진됐고 부실점포.저수익 부서의 폐쇄,대규모 인원감축이 뒤따랐다.95년 상반기 현재 약 1백50만명이던 은행원 수가 앞으로 10년안에 1백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건전성 감독=80년대 들어와 소규모 금융기관 도산이 큰 문제가 되었을때 미 의회와 정부는 무조건 감독을 강화하기보다 약2년간에 걸쳐.경쟁력 강화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자기자본 규제는 강화됐지만 자기자본이 충실한 은행에대해서는 감독 규제가 완화됐다.
95년 다이와은행 뉴욕지점의 불법거래 사건이 터졌을 때도 감독당국자들은 의회 청문회에서“현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있다”며 연속 10일 휴가제등 부분적인 예방조치만을 취했다.
[워싱턴=김수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