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 의원 “정권 도울지 말지 박근혜 전 대표가 선택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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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10면

“인사가 어디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창당 11주년 맞은 한나라 무기력증 언제까지

이상득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이재오 전 의원의 입각에 대한 견해를 묻자 손사래를 쳤다. 그는 “우리 식구들은 절대 서로를 팽하지 않는다. 이재오에게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면서도 막상 그의 입각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여권 일각에서는 이 의원이 이미 이달 초 “앞으로 1년은 미국에 더 머물러 달라”는 메시지를 이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이 의원은 최근 여야를 넘나들며 의원들을 두루 접촉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를 부탁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 올봄 ‘만사형통’ 논란에 휘말린 뒤 공식 활동을 가급적 자제했던 그가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도 여권의 다급한 사정을 말해 준다. 그와 가까운 한 측근 의원은 “정치 상황이 너무 꼬이고 당이 단합하지 못하니까 답답한 마음에 그가 정치 원로로서 역할을 한 것일 뿐”이라며 “친이의 구심점 역할을 맡으며 전면에 나설 생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친형으로 천성이 부지런한 그가 고비마다 청와대의 의중을 전달하며 물밑 조정 역할을 해 왔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4월 총선 때 그의 공천 배제를 주장했던 몇몇 소장파 의원조차 최근 그의 역할 확대론을 주장하고 있다.

총선 공천 문제로 시끄러웠던 지난 3월 말. 부산에서 당직자와 만나고 있던 이 의원에게 급히 전화가 걸려왔다. 충남 예산-홍성의 현역 의원이었던 홍문표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탕해 자유선진당으로 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전화였다. 시간은 이미 자정이 가까웠다. “너무 늦었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73세의 고령인 그는 “충청도가 중요하다”며 밤새 승용차를 타고 예산으로 달려갔다. 결국 탈당하지 않은 홍 의원은 지난 9월 농촌공사 사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그의 막후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현직 대통령의 형이라는 시선과 한계는 그의 역할 확대에 경계선을 긋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공백을 이재오 전 의원이 메워야 한다는 게 이재오계 의원들의 주장이다.

홍준표의 독주 … 당·정 잇따른 엇박자
이달 초 홍준표 원내대표에게 국제전화가 걸려 왔다. 미국 워싱턴에 머물고 있던 이재오 전 의원이었다. 미국행 이후 처음 홍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온 그는 며칠 전 홍 대표가 라디오 방송에서 “이재오 전 의원 본인이 활동할 공간을 마련하는 게 옳으며 지금도 언제든지 활동할 수 있다”며 그의 복귀에 긍정적 발언을 한 데 대해 매우 고마워했다고 한다. 이 전 의원의 강한 복귀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난 총선 공천 물갈이를 주도했던 그의 복귀는 친박 의원들을 자극해 또 다른 계파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권력 핵심부로서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 전 의원의 핵심 측근인 김용태 의원은 “이번 정기국회를 계기로 대통령 생각이 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의원은 “여의도 정치와는 거리를 두며 일에만 몰두하는 대통령이 이번 정기국회 때 개혁 입법의 좌절을 겪게 되면 이 전 의원의 존재와 역할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계가 구심점을 잃는 동안 그간 중립 지역에 있던 인사들이 친박으로 기울고 있다는 소문마저 돌고, 이에 친이 직계인 안국포럼이 결집하는 등 친이와 친박이 여전히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있는 점도 당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상득 의원은 최근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소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명박 정부를 적극 돕는 것이 낫겠는지, 아니면 (지금처럼) 독립적으로 거리를 두는 게 도움이 될지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스스로 입장을 정할 사안이지 주류 측의 태도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였다. 지난 6월 박근혜 총리 기용 건의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와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가운데 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도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친이·친박 등 계파를 불문하고 홍 대표의 독주를 비판하는 모양새다.

20일 오전 고위 당정회의. 종부세 개편과 관련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전보고를 통해 종부세 과세기준을 정부안대로 현행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강조하자 홍 대표가 버럭 화를 냈다. 그는 “정부 입장만 그렇게 고집하다간 대야 협상이 불가능하다”며 언성을 높였다. 결국 한승수 총리가 나서 종부세 관련 논의를 모두 당에 일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안국포럼 소속의 한 초선 의원은 “수시로 ‘국민 감정’이나 ‘야당과의 협상’을 이유로 당과 정부·청와대 생각과는 다른 개인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홍 대표의 모습은 과거 야당 저격수로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여권 사령탑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이런 당내 혼란 상황에서 원외인 박희태 대표는 조정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정치인보다 실무형 관료 스타일인 임태희 정책위의장도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무능 질타 목소리 커져
청와대 보좌진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헌재 위헌 결정을 기다렸다 ‘떠밀리는 듯’ 해도 될 종부세 완화 문제를 9월부터 치고 나와 정치적인 부담을 주는 등의 실책은 청와대 보좌진의 정무 감각 부족 때문이라는 비판이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의 경우 교수 스타일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치밀한 국회 전략을 짜야 할 맹형규 정무수석은 전략적 마인드가 부족하는 평이다. 맹 수석은 2006년 서울시장 경선에서 경쟁한 홍 대표와의 스킨십도 원활하지 않다고 한다. 대통령의 또 다른 정무 참모 역할을 하고 있는 이동관 대변인은 KBS 사장 후보 비밀 회동, 국정원 2차장과의 모임 등의 가벼운 언행과 부적절한 처신으로 구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립 성향의 한나라당 재선 의원은 “지금 청와대에는 버락 오바마가 차기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내정한 램 이매뉴얼처럼 전략적 사고로 무장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싸움닭’ 같은 존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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