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 자반 먹고 ‘갈치배’ 만들어 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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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15면

시인 김용관이 ‘은빛 옷 입은 바다의 신사’라고 표현한 갈치는 농어목에 속하는 바다 생선이다. 다 자라면 길이가 1∼1.5m에 달한다. 몸이 긴 칼처럼 생겼다고 해서 갈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신라시대엔 칼을 ‘갈’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영어명은 머리칼 같은 꼬리를 가졌다고 해서 헤어 테일(hair tail)이다. 새끼는 풀치라 한다.

5~12월에 주로 잡히는 갈치는 산란을 마치고 겨울을 대비해 한창 먹성 좋은 10~12월에 잡힌 것의 맛이 가장 뛰어나다. 특히 줄낚을 통해 건져 올린 것은 맛이 기막히다. 올라오는 동안 갈치가 몸부림을 치는데 이때 갈치의 당분인 글리코겐이 분해되는 해당(解糖)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갈치는 날렵한 몸매의 소유자다. 음식을 양껏 먹어도 불러 오르지 않는 배를 ‘갈치배’, 좁은 공간에서 여럿이 모로 자는 잠을 ‘갈치잠(칼잠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하는 것은 갈치의 생김새를 빗댄 표현이다.

‘맛 좋고 값싼 갈치 자반’이란 옛말이 있듯이 갈치는 오랫동안 서민의 친구였다. 그러나 최근 국내 소비량이 크게 늘어난 반면 공급은 줄어들어 이제는 ‘고가의 귀하신 몸’이 되었다.

갈치는 모성애와 건치(健齒), 그리고 서서 사냥하기로 유명한 생선이다. 암컷은 산란한 뒤 먹이도 먹지 않고 자신의 알을 보호한다. 날카로운 이빨을 ‘재산목록’ 1호로 여기는 갈치는 껍데기가 단단한 것은 절대 먹지 않는 등 이빨을 끔찍이 아낀다. 머리를 위로 꼬리를 아래로 한 채 유영하면서 멸치·참조기·오징어 등 먹이를 낚아채는 것은 고유의 사냥법이다.

갈치는 흰 살 생선에 속한다. 다른 흰 살 생선과 마찬가지로 맛이 담백하다. 그러나 여느 흰 살 생선에 비해 지방 함량(100g당 7.5g)이 높은 편이다. 특히 꼬리 부위와 뱃살(가운데 토막)에 지방이 많이 들어 있다. 지방의 대부분이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 지방이므로 고혈압·심장병·뇌졸중 등 혈관질환 환자에게 권할 만하다.

갈치는 100g당 단백질 함량이 18.5g인 단백질 식품이다. 특히 껍질엔 콜라겐·엘라스틴 등 피부 건강에 이로운 단백질이 풍부해 피부 노화가 고민인 사람이라면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어린이용 식품으로도 훌륭하다. 성장을 돕지만 우리의 주식인 쌀밥에 부족하기 쉬운 아미노산인 라이신이 풍부해서다.

갈치는 산성 식품으로 분류된다. 칼슘(100g당 46㎎)보다 인(191㎎) 함량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갈치를 먹을 때는 알칼리성 식품인 채소를 반드시 곁들이는 것이 좋다(오산대 식품조리학과 배영희 교수).

가장 조심해야 할 부위는 ‘비늘’이다. 엄밀히 말하면 갈치의 몸 표면을 덮고 있는 것은 비늘이 아니라 구아닌이란 은백색 색소다. 구아닌은 인공 진주의 광택 원료로 사용되는데 영양가가 없고 소화도 안 된다. 또 독성이 있어 섭취하면 복통·설사·두드러기 등을 일으킨다. 배에서 갓 잡은 갈치를 회로 뜰 때 먼저 표면을 호박잎이나 수세미로 문지르는 것은 구아닌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아니사키스라는 고래 회충에 감염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방어·고등어 등 붉은 살 생선보다는 기생충 감염 위험이 적고 갈치는 대개 가열 조리해 먹으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부경대 식품생명공학부 조영제 교수).

한방에선 갈치를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하고, 특히 위장을 따뜻하게 하는 생선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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