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문근영이 동네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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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문근영씨는 수억원을 기부해 새삼 남 몰래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려줬다. 가수 김장훈씨는 독도를 지도에서 다시 한번 보게 만들었다. 탤런트 최진실은 죽음으로 악플의 과도한 폐해와 우울증의 심각성을 일깨웠고, 그 남편 조성민씨는 친권 논란으로 이혼 자녀의 친권 지정에 대한 맹점에 눈뜨게 했다. MC 강병규씨를 통해서는 문화부 공금의 허술한 사용 관리와 인터넷 도박의 심각함을 알게 됐다. 탤런트 옥소리·박철씨 부부는 이혼 소송을 하며 아직도 간통이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범죄라는 암울한 현실을 깨닫게 해줬다.

연예인은 우리에게 세상을 비춰 주는 창일 뿐이다. 가슴 훈훈해지는 선행이든 혹은 마음 휑해지는 악행이든 그들의 행동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좀 더 유명한 사람들을 둘러싼 일들 덕분에, 혹은 그들의 행동 탓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들을 보게 됐다면 그것에 눈뜨게 된 일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그들이 비춰 준 그 창 너머의 현실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를 고민해 보는 게 제대로 된 스텝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과 논란은 안타깝게도 늘 엉뚱한 데로만 튄다. 인터넷에 들끓는 논쟁은 연예인이라고 하는 창문에 낙서를 해대고 돌을 집어 던지는 일에만 정조준되어 있다. 인격과 사생활에 대한 인민재판식 과잉반응이 주를 이룬다. 불똥은 엉뚱한 데로만 튀고 정작 창 너머의 현실을 이성적으로 바꿀 생각은 뒷전이다. 마치 연예인의 행동을 비난하거나 칭찬하는 일로 우리의 정치·사회적, 혹은 법적 의무와 역할을 다하는 거라 믿는 ‘현실과 사이버’에 대한 혼돈이 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강병규 파동’ 문제의 핵심은 ‘연예인의 특권의식’이라는 모호한 실체에 대해 감정적으로 욕을 해대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유인촌 장관과 문화부가 2억원대의 공금을 그렇게 손쉽게 마구잡이로 써대는 과정의 불법성에 있다. 돈의 사용 내역이 낱낱이 밝혀지고 그 과정에서 잘못한 사람이 있다면 적법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게 연예인이든 공무원이든 장관이든 간에. 연예인 강병규씨의 운신은 사실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지가 이렇게 땅에 떨어진 그는 연예인으로서 생명을 다해 자연스럽게 도태될 테니 말이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은 딴 데 있다. 조성민씨가 이혼 과정에서 얼마나 뻔뻔한 일을 저질렀고 그래서 아비 자격이 없는지에 대해 감정이 아무리 끓어올라도, 그렇게 느낀 사람이라면 그가 아버지 노릇을 못하도록 친권 관련 법을 바꾸는 노력을 하는 데 힘을 쏟는 게 맞다. 그에 대해 아무리 욕을 해대도 그것만으로는 달라지는 현실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문근영씨의 기부에 대해 이미지 관리니, 좌익의 문화적 선동이니 하는 헛다리 짚기에 대해선 거의 코미디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문씨가 조작한 천사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문씨를 미워해 달라고 부탁하시길. ‘문근영 조상’ 같은 좌익의 문화선전이 사회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라면 조용히 주변 사람들의 사상 안전 교육에 몰두하시길. 문근영씨와 그 조상의 행동에 만약 불법적 일이 있다면 법대로 처리하는 건강한 사회가 되도록 작은 노력을 기울이시길. 하지만 그렇게 유치한 에너지를 쏟을 힘으로 돌봐야 할 주변의 이웃들은 없는지, 그걸 보지 못했던 스스로를 반성해야 하지 않는지, 문근영씨 덕분에 이런 생각도 하게 되지 않았는지도 한번 돌아봐 주시길 부디, 바란다.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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