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논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논객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정치 민주화와 인터넷의 영향이 컸다. PC 통신과 초창기 인터넷을 무대로, 그간 억압돼온 사회적 발언이 분출했다. 신종 지식인에 해당하는 ‘사이버 논객’ 1세대가 등장했다. 신문 등 제한된 매체에서 교수·전문가·평론가라는 사회적 지위를 내세우며 글을 쓰고 여론을 이끌어온 지식인 그룹과 달랐다. 제도화된 자격증에 구애되지 않고, 논리와 글솜씨만으로 네티즌에게 권위를 인정받았다. 시쳇말로 ‘계급장 떼고 하는 끝장토론’이 이들의 특기였다.

인터넷언론의 출현, 2003년 대선 등을 거치며 수많은 인터넷 논객이 명멸했다. 오프라인의 스타 평론가들이 인터넷으로 옮겨오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네티즌이 스타 논객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네티즌 대중 스스로가 여론을 이끄는 ‘대중 지성’ ‘집단 지성’의 징후도 나타났다. 보다 최근에는 UCC 열풍을 반영하듯 글만으로 승부하는 논객보다는, 영상 이미지를 갖고 노는 ‘폐인’ ‘디지털 호모나랜스(Homo-narrans·수다쟁이)’들이 각광받고 있다.

인터넷 논객들이 벌이는 뜨거운 설전은 때로 과열돼 문제가 되기도 했다. 편향된 시각과 극단적인 발언이 ‘사이버 테러’ 수준으로 번지기도 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카타르시스 망국론’을 폈다. “인터넷 논객들이 쏟아내는 독설이 대안이나 해법 제시에는 실패하고, 지지자에게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데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논객들의 글이 상대 진영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거나 타협점을 찾으려 하기보다, 자기 진영 내부의 결집이나 집단적 한풀이에 치중해 진정한 소통과 논쟁의 가능성을 막는다는 것이다.

최근 여러 논객들이 일시에 관심을 끌고 있다. 인터넷 경제 논객 ‘미네르바’는 금융위기에 대한 예측으로 주목받으며 뉴스 메이커가 됐다. 군사평론가 출신의 한 보수 논객은 탤런트 문근영씨의 기부를 ‘빨치산 정치 공작’이라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진보 논객인 진중권 중앙대 교수가 “70년대 초등학생의 반공 글 같다”고 맞받아쳤다.

검객이 칼로 상대를 베듯, 논객은 글로 상대를 제압하는 사람이다. 논리의 칼끝이 날카롭게 서있지 못하다면 싸움은 애초 성립 불가다. ‘논객’이라는 타이틀도 유지되기 힘들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