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체험학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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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높은 언덕을 보지 않고서야 어찌 자기가 자빠질까 근심하겠으며,깊은 못에 가보지 않고서야 어찌 자기가 빠져 죽을까 조심할것이며,넓은 바다에 가보지 않고서야 어찌 풍파가 무섭다는 것을깨달을 수 있으리오.”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흔히 인용되는 공자(孔子)의 말씀이다.이 말이 존재의.확인'을 뜻한다면“한가지 일도 체험하지 못하면 한가지 지혜도자라지 않는다(不經一事 不長一智)”는 말은 반드시 사물의 존재를.체험 '해야 함을 뜻한다.곧 사물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를 체험하게 되면 삶의 지혜는 저절로 얻어진다는 의미다.
공자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선현(先賢)들은 노동을 포함한 현실적인 모든 체험을 교양교육 이외의 또 다른 하나의 교육으로간주했다.그 체험들이 주로 땅을 비롯한 자연과의 친화를 의미한다는 점도 모두 비슷하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여 러 세기동안 학교들은 거의 예외없이 교양교육만 중시해왔고,체험교육은 학교교육과는 관계없는 비정규적인 교육으로만 이뤄졌다.
교육개념이 학교로부터 넓은 의미의.학습'으로 확대되기 시작한것이 금세기 중반 이후부터의 일이니 인간의 깨달음이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어떻든 교육장소는 학교를 벗어나 가정.교회.사적지.경기장.노동현장 등으로 확장됐고,교사.교과 서에만 국한됐던 지식의 출처도 신문.방송.도서관.박물관.문화현장 등으로 훨씬 다양해졌다.자연이나 생태계와 관련한 이른바.환경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역사도 오래지 않다.
그러나 체험학습의 실시나 성과여부는 그 나라의 교육제도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체험학습에 대한 학교.학생.학부모의 열망이아무리 높더라도 여전히 진학을 위해 읽기.쓰기.셈하기 따위가 가장 중시되는 상황에선 체험학습이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는얘기다. 교육부가 종래 5%와 8%로 돼 있는 중.고교의 특별활동시간을 학교장재량에 따라 20%와 25%로 늘릴 수 있도록한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한다.취지야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지금과 같은 교육제도 아래서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 는진 여전히 의문이다.어쨌거나 삶에 있어서 체험이 왜 중요한지를 인식시키는 일부터 선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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