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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속의 문화유산>2.측우기.천문도 그 리고 칠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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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사람들은 주로 옛 미술품을 우리의 값진 문화유산이라 생각한다. 박물관을 가득 채운 미술품은 이런 우리의 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미술품을 ‘아름답다’고 보는 느낌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런 감정에 호소하는 문화유산보다 객관적으로 남보다 나은 것을 우선적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에도 객관적으로 우수한 문화유산들이 제법 많다. 훨씬 큰 중국과 조금 큰 일본의 틈에 끼여 산 우리 선조들이 이만큼의 자랑거리를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다행이다. 그래서 ‘정말로’ 다른 나라와 비교해 ‘앞선’ 세가지만 골라 말하려 한다. ‘세계 속의 우리문화’라는 잣대로 재어 말하려는 것이다. ‘내 마음 속의 문화유산’이 ‘세계 속의 문화유산’으로 승화될 때 더욱 값지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과 깊은 인연

내가 고른 문화유산 세가지는 측우기와 천문도·칠정산(七政算)이다. 골라놓고 보니 재미있는 공통점이 먼저 눈에 띈다. 모두 세글자로 이뤄졌고 치읓자로 시작된다. 하늘의 과학과 관련된 유산이라는 공약수도 흥미롭다. 측우기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재는 그릇이며, 천문도는 하늘의 별들을 그린 그림이고, 칠정산이란 천체운동을 계산하는 기본틀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들 셋은 또 올해 탄생 6백년을 맞는 세종임금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짜 중요한 공통점은 우리 문화유산의 세계속 위치를 아주 잘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순서를 거꾸로 살펴보자. 첫째로 1442년(세종24년)에 완성된 칠정산은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계산해 낼 수 있는 체계를 완성한 것이다. ‘세종실록’에 부록으로 붙어 있다. 이를 통해 조선초기 우리 조상들은 일식과 월식쯤은 아주 간단하고도 정확하게 예보하는등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천문학을 성취했다. 세계에서 그런 높은 수준―자기 위치에서 일식·월식을 예보할 수 있는―의 학문을 가진 나라는 중국·아랍에 이어 세번째쯤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이 천문계산술이 2세기나 지나서야 처음으로 일본에 전해졌다는 점이다. 조선통신사의 독축관(讀祝官)이었던 박안기(朴安期)는 1643년 당시 일본 최고의 학자를 만나 칠정산 계산술을 가르쳐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유명한 천문학자 히부카와 하루미(澁川春海)가 20여년의 연구 끝에 1862년 ‘정향력’(貞享曆)을 완성하게 된다. 일본인들은 이 역법을 ‘일본인이 만든, 일본에 맞는, 일본 최초의 천문계산법’이라 크게 자랑하고 있다. 일본의 큰 사전등에선 이 천문학자의 업적이 당시 조선학자의 도움으로 가능했다고도 밝히고 있다.

반면 이 자랑스런 사실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울 기회가 없다. 칠정산이란 말이 역사책에 잠깐 나오지만 단지 ‘세종때 새로 만든 달력’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만다.

달력이라니, 참 어이없는 일이다. 오늘날의 달력은 대단할 것 없는 종이쪽에 불과하다. 바뀌는 것이 있다면 양념으로 들어 있는 그림이나 배우 정도. 하지만 옛날의 역법(曆法)이란 지금의 달력과는 크게 다른 천체운동 계산술 전체를 의미했다.

日本보다 2세기나 앞서

세종의 칠정산 완성으로 조선의 천문학은 세계 최첨단을 달리게 됐고, 일본은 2세기 뒤에서야, 그것도 조선학자의 도움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 이런 문화유산을 한국인이 모르고 살아야 하니 우리 교육이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천문도. 우선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돌에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가 있다. 원안에 적도와 황도, 그리고 1천4백65개의 별을 새기고 그 주위에 절기마다 남하하는 별이름을 기록했다. 2년전에 6백돌 생일잔치를 간단히 치렀으니 그것만으로도 자랑스런 문화재다. 또 17세기에 이르러 너무 닳아 보기가 어려워지자 숙종이 다른 돌에 그대로 다시 새겨놓았다.

지금은 아무도 천문도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지도 없이는 살기 어렵지만 천문도를 쳐다볼 필요는 거의 없는 시대다. 하지만 1세기만 거슬러 오르면 선조들은 누구나 천문도를 갖고 있거나 갖고 싶어 했다. 지도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늘은 언제나 볼 수 있었으나 세상을 유람하기란 거의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선인들에게는 1백리 저쪽 나라보다 1만리 이상의 저 하늘이 훨씬 가까웠던 셈이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정반대 상황이 돼버린 지금 기준으로 선조들의 처지를 오해하면 안된다.

中國연호때문에 오해 불러

그렇지만 내 마음에 있는 천문도는 이것이 아니다.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 위플과학사박물관에 소장된 천문도를 말한다. 18세기초 조선의 관상감 천문학자들이 만든 이것은 일제시대에 영국으로 건너간 것이 분명하다. 국내에도 속리산 법주사에 비슷한 그림이 하나 있다. 8폭 병풍과 비슷한 크기로 영국에 있는 것이 보관상태가 양호하다. 법주사 천문도가 북극 둘레의 별을 두개의 원에 그려놓은 것과 달리 위플박물관의 천문도는 한쪽에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그리고 나머지 4폭에 북극과 남극의 별들을 그렸다.

옛 그림이나 책들에 대해서는 외국에 나가 있는 것을 알아도 보고 조사도 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유산에 대한 조사는 아무도 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세번째로 측우기가 있다. 세상이 다 아는, 세종때 우리 조상들의 발명품이다. 중국·일본에서도 그런 것이 발명된 일이 없다. 과학이 먼저 발달해 그 힘으로 세계를 제패한 서양 사람들도 측우기 비슷한 것을 세종의 측우기보다 2백년이나 뒤져서야 만들었다.

그런데 중국 책은 모두 중국에서 처음 발명해 한국에 보낸 것이라고 쓰고 있다. 중국에서는 과학사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모든 책들이 그렇게 적고 있다. 중국책을 열심히 읽는 서양학자들은 이 말을 자연스럽게 그대로 옮겨놓는다. 그래서 우리의 측우기는 중국의 발명으로 둔갑해 가고 있다. 중국 사람들만이 아니라 세계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말하는 판이다.

중국인들의 잘못은 아주 간단한 오해에서 시작됐다. 현재 보존돼있는 가장 오래된 측우기의 제작연도가 1770년으로 밝혀졌는데 거기에 ‘건륭경인오월조(乾隆庚寅五月造)’라고 기록됐기 때문이다. ‘건륭’이란 청나라 연호. 중국학자들은 이 연호 하나로 그것을 중국 것으로 착각했을 뿐이다. 중국 과학사학자들은 아무도 한국의 역사를 배우지 않는다. 한국사람들이 따로 연호를 만들지 않고 중국 연호를 썼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는 눈뜨고 빼앗기고 있는 우리 문화재를 지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랑스런 우리 문화유산은 우리끼리만 자랑스러워해서 될 일이 아니다. 세계의 공인을 받는 문화유산이어야 하는 것이다.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과학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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