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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총리 후보 '만모한 싱' "인도 경제 개혁의 설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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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 차기 인도 총리로 유력시되는 만모한 싱(右)의 옆에서 18일 소냐 간디 국민회의 당수가 총리직 고사 의사를 밝히기 직전 고민하고 있다. [뉴델리 AP=연합]

인도 총선에서 승리한 국민의회는 소냐 간디 당수가 총리직을 고사함에 따라 19일 만모한 싱(72) 전 재무부 장관을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총선 결과가 발표된 13일 이후 폭락세를 보여온 뭄바이 증시의 센섹스 지수와 내셔널 증시의 니프티 지수 등 인도 주가지수는 간디의 총리직 포기로 오름세로 반전했으며 싱이 총리 후보에 지명되자 추가로 상승했다.

하지만 간디 당수의 총리 취임을 지지하는 당직자들이 싱의 후보 지명에 반발하며 전원 사퇴하는 등 정국은 계속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이들은 간디 당수의 총리직 고사 선언을 번복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싱 총리 후보는=조용한 목소리에 굵은 뿔테 안경을 쓴 싱은 경제학자 출신으로 인도 경제개혁의 설계자로 불린다. 1992년부터 96년까지 국민의회 정권 아래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내면서 오늘날 인도가 중국 등과 함께 세계경제의 견인차로 주목받게 될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싱이 입각한 92년 인도 경제는 사실상 파산상태였다.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8.5%였으며, 외환보유액은 2주일치 수입물품 대금을 결제할 수 있는 10억달러에 불과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세상의 어떤 권력도 시대의 흐름을 막지는 못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반세기를 이어온 인도의 사회주의 경제틀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정부가 산업을 독점하고 농촌의 생산 작물까지 일일이 지정하던 관리경제 제도를 혁파하고 세제를 간소화했다. 그러자 정부의 규제와 공무원의 전횡이 크게 줄었다. 루피화를 평가절하해 수출을 촉진하고 해외자본을 적극 유치했다.

이후 5년간 인도는 매년 평균 7%의 성장을 기록했으며, 96년 물러날 당시 외환보유액은 800억달러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패배한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총리가 그간 자랑해온 경제 치적도 사실은 8년 전 물러난 싱의 유산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싱은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란 경제철학을 주창했다. 비효율적인 정책은 근절하겠지만 기간산업의 국가 소유와 같은 최소한의 사회주의적 정책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종의 혼합경제모델이다. 인도처럼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은 나라는 전력 등 산업 인프라를 국영 기업이 맡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펀자브 지방 출신인 싱은 영국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델리와 펀자브 대학에서 강의하다 69년 경제정책 자문위원으로 행정에 첫발을 디뎠으며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이사를 지냈다.

학자와 경제관료로서 정치적으로 전면에 나선 적이 없는 싱이 암살과 종교갈등, 이웃나라와의 영토 분쟁 등 난제가 산적한 인도 총리직을 맡아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그는 힌두교도가 인구의 80%가 넘는 인도에서 종교적 소수파인 시크교도다.

시크교는 일신교라는 이슬람적 요소와 윤회라는 힌두적 요소를 합친 종교로 신도는 인도 인구의 1.9%에 불과하다. 이 종교의 지배종단인 할사에 입회한 남자 신도는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쓰며 싱(수사자)이라는 성을 쓴다. 여성은 카우르(암사자)라는 성을 사용한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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