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혈액형 검사…수혈 사고 '빨간 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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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상당수 병원들의 혈액검사 방법이 잘못돼 혈액형이 다른 피가 환자에게 수혈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경우 적혈구 등이 파괴돼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 또 대학병원들이 지나치게 많은 피를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02년 7~9월 대형 병원 268곳에 입원한 환자의 수혈 실태를 조사해 19일 열린 '수혈 적정성 평가 심포지엄'에서 공개했다.

◇잘못된 혈액형 조사방법=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1995년 경기도의 한 동네 산부인과 의원에서 출산한 A씨는 자궁출혈이 심해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정밀 혈액형 검사를 하는 데 두 시간을 보낸 끝에 수혈받았지만 출혈성 쇼크로 숨졌다.

동네 산부인과는 A씨의 혈구(적혈구나 백혈구) 검사만 했다. 원래는 혈청(혈구를 제외한 혈액) 검사도 같이 해 두 개를 대조해 혈액형을 판단했어야 하나 한 개의 방법만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 병원에서 검사를 다시 해야 했고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검사결과는 동네 산부인과와 달랐다. 혈구는 O형, 혈청은 B형인 Bm형의 특이한 혈액이었다.

대법원은 99년 "동네 산부인과 의원이 정밀 혈액검사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다"면서 이 의원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혈액검사는 혈구와 혈청형을 검사해 일치하는지를 확인해야 정확한 혈액형을 알 수 있다.

심사평가원 조사 결과 268곳 대형 병원 중 242곳은 이 원칙을 따랐다. 하지만 지방의 K.J 병원 등 25곳(9.3%)은 혈구형만, 한 곳은 혈청형만 검사했다. J병원은 조사기간 중 1200명의 환자 피를 혈구형 검사만 하고 수혈했다.

서울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한규섭 교수(대한수혈학회 이사장)는 "한 가지 검사만 할 경우 1000명 당 5명꼴로 혈액형이 틀릴 수 있다"고 말했다.

◇과잉 수혈=심사평가원이 42개 대학병원에서 2002년 7월 하루 동안 수혈받은 1579명의 수혈량을 조사한 결과 적혈구는 298명(18.9%), 혈장은 286명(18.1%)이 적정 수혈량(기준)보다 많이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은 대한수혈학회가 2002년 말 마련한 것으로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비슷한 증상의 자궁적출 수술을 하면서 인천의 K병원은 0.6봉지의 적혈구를 사용한 반면 충남 C병원은 네배나 되는 2.3봉지를 사용했다. 병원별로 혈장은 9배, 혈소판은 11배나 수혈량의 차이가 났다.

의료전문 신현호 변호사는 "병원이 수익을 올리기 위해 혈액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수혈 기준을 엄격히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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