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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고교 경제 교과서 이래도 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자본이 풍부하고 이자율이 비교적 싼 선진국은 자본을 후진국으로,무역흑자국도 자본수출국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재정.투융자는 국가신용을 통해 모아진 공적자금을 재원으로 공공목적을 실현…'.
기본 문법도 안맞고,내용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것들이다.고등학교 경제교과서 내용의 일부다.
“선생인 나도 잘 모르는 용어가 잔뜩인데,학생들이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원고 수정작업에 참여했던육근록(陸根綠.서울광남고)교사의 말이다.5년만의 개정판인데도 이 정도다.학생들은 뜻도 모르는 골치 아픈 경제용어들을 시험용으로 암기하는게 전부라고 덧붙였다.
어려운 것은 고사하고 잘못된 설명이 수두룩하다.“경제안정을 해치는 빠른 성장은 이룩될 수 없으며”(31쪽)라는 설명은“바람직하지 않으며”의 잘못이며,경기순환에 대해“나라경제에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적절한 수준에서 경기상승을 유지하는 일”(1백39쪽)이라는 설명은 경기상승과 경제성장을 혼동한 것이다.
금융소득 종합과세에 대해“이자에 대해 분리과세하던 것을 금융자산 전체로 합산해 이자 소득의 다과에 따라 세금을 부과(1백12쪽)”하는 것이라고만 설명하고 있다.앞뒤 어디에도 4천만원이상의 금융소득을 다른 소득과 합쳐 과세한다는 말이 없다.
“어떻게 하면 지루하게 만들까 고민하고 만든 것같다”고 경문고 金모(고2)군은 털어놓는다.
2백50여쪽에 달하는 경제교과서에 그림은 겨우 30컷 안팎(사진.도표 제외).그나마 실린 그림도 어려운 내용을 설명하는 것보다 통계수치를 그래프로 만든게 대부분이다.
대기업을 험상궂은 상어로,중소기업은 연약한 물고기로 묘사하는삽화(79쪽)는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잡아먹는 나쁜 쪽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시장 기능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최근 인기있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가격 명세표가 등장하는 미국 교과서나 거의 모든 페이지에그림이나 만화가 나오는 독일.프랑스 교과서와는 비교도 안된다.
정부는 기관차,민간기업은 거기에 달린 객차로 묘사된 삽화도 시대착오적이다.교과서의 구성자체가 정부위주로 편성돼 있다..정부'부분은 분량만 40여쪽에 달해 전체 2백55쪽의 15.3%나 된다.
〈정경민 기자〉 삼성경제연구소 박찬용(朴컴퓨터 소프트웨어의 가격 명세표가 등장하는 미국 교과서나 거의 모든 페이지에 그림이나 만화가 나오는 독일.프랑스 교과서와는 비교도 안된다.정부는 기관차,민간기업은 거기에 달린 객차로 묘사된 삽화도 시대착오적 이다.교과서의 구성자체가 정부위주로 편성돼 있다..정부'부분은 분량만 40여쪽에 달해 전체 2백55쪽의 15.3%나 된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찬용(朴贊用)박사는“미국의 교과서가 정부에 할애하고 있는 분량은 쪽수로 따져 9.9%,싱가포르 교과서는 5.7%에 불과하다”며“한국 교과서는 마치 정부 홍보용 책자같은 느낌마저 준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 교과서가 기업이나 국제경제를 다루는 비중은 미국.
싱가포르 교과서의 5분의 1에도 못미친다.
경제교과서의 이같은 부실제작은 정부의 현행 교과서정책에서 비롯된다. 교과서는 교육부가 제작을 독점하는 1종(국정)과 일반출판사들이 만들 수 있는 2종(검인정)으로 나뉘는데,경제교과서는 아직 1종이다.
93년부터 개정작업이 시작된 새 경제교과서의 제작비는 그나마나아진게 고작 1천2백35만원(인쇄비 제외).일반 출판사들이 2종 교과서 한권을 만드는데 2억~3억원을 투자하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많다.
집필과정도 주먹구구식이다.우선 교과과정에 대한 연구와 실제 교과서 집필이 따로 놀고 있다.
예산에는 교과과정 연구비가 교과서 제작비보다 훨씬 많이 배정돼 있지만,집필은 몇몇 경제학과 교수들에게 맡겨 연구와 아무 상관없이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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